킹스맨 배포전에서 나와 함께 이번 행사의 유일한 퍼랜 부스를 지키셨던 내 존잘 에녹님의 퍼랜 소설 회지를 정독한 것은 행사가 열렸던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이제야 그 독후감쯤 되는 글을 쓰는 것은 어제의 내가 책을 다 읽고 그 여운에 취하여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욕설이나 내뱉을 줄 알았던 것이 크다. 그리고 첫 원고와 첫 행사참가의 여파가 둘째이며, 책의 배경이 된 세계를 따온 영화 원작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책 내용을 이해함에 약간의 부족함이 있기도 했던 탓이다.


<무언의 증인>은 퍼시벌의 시점에서 제임스-란슬롯의 죽음 이후를 그려내는데 킹스맨과 퍼펙트 센스의 세계관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스토리의 시작이 킹스맨 영화에서처럼 제임스의 죽음이라는 것은 같았으나, 영화 퍼펙트 센스의 감각을 상실하는 병이란 요소를 차용하여 중반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스토리대로 흘러가서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건대, 나는 <무언의 증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분위기와 제임스를 중심으로 그를 향해 있는 각 인물들의 감정선 및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한데 뭉쳐진 결말까지 그 모든 것에 완전히 매료되어 종국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넉다운 되어 떡실신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제임스의 죽음이 촉발한 퍼시벌의 상실감, 슬픔, 집착 같은 것들은 그가 제임스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발렌타인의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점점 깊어져간다. 그는 제임스의 죽음에 대해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록시를 끌어들여서 함께 발렌타인을 처치하고 연관자들을 색출해내는 일에 성공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제임스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사실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임무가 완전히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따. 그들의 진짜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발렌타인이 남긴 유산이 그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렸기 떄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스토리는 좀 더 급박하게 달음박질을 친다. 진실을 알고 싶었던 퍼시벌은 멀린과 대치한 끝에 경고하는 멀린에도 불구하고 제임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고 만다. 그것은 정말이지 퍼시벌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었으리라.


그렇게 퍼시벌이 충공깽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는 나도 충공꺵의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마주한 진실이 비단 끔찍해서만은 아니었고, 그때쯤에 퍼시벌의 감정선을 따라 짚어가던 내가 그가 받았을 충격과 공포를 조금이나마 느꼈기 떄문일 것이다. 물론, 퍼펙트 센스에 대한 배경지식이라고는 감각이 사라지는 병이 인류에게 전염병으로 돌고 있다는 정도밖에 없었던 나는 과거에 왜 퍼시벌이 제임스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이는 나중 문제였다.


이후로 두 가지의 감각만이 남은 퍼시벌과 록시가 그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둘의 복잡미묘하게 얽혀버린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보면서는 쾌재를 불렀다. 퍼시벌을 앞에 둔 록시가 그에게 어떻게 할지, 이 책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상했던 참이었으나, 그 예상치가 이 책의 마지막 음절까지 모두 읽어냈을 때의 그 여운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우르는 퍼시벌과 록시의 관계와 그들의 감정선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 결말만큼 합당한 것은 없었으며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결말도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나는 매우 만족함과 동시에 뒤통수를 누군가가 가격한 것과 같은 얼얼함만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렸을 떄는 내가 방금 읽은 것이 무엇이었나를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각 장을 나누어서 각 장이 시작됨을 알리는 페이지에 적힌 인용구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감탄사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자기반성 비스무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나는 정말이지 캐릭터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복잡미묘한 감정선들을 표현하는 것에 젬병이었기에 이런 것들에 맥을 못 추었다.


그리고 사실은 특전으로 함께 받은 마왕(Der Erlkonig)은 이미 예전 연성으로 웹에 올리신 것과 같았기에 내용을 알고 있었꼬, 수록되지 않은, 날리셨다던 뒷부분도 다 기억을 하던 바였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제임스를 향한 록시의 감정과 제임스의 생전에 그 두 사람이 맺었을 관계를 오롯이 나의 상상만으로 덧칠하여 여운에 여운을 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녹님께서 계획하셨던대로 3부작이 제대로 나왔더라면 좋았겠지만, 현재에도 나는 만족을 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역시 존잘은 달라... 에녹님이 계획하셨던대로 3부작을 제대로 다 써서 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해요 에녹님. 나 진짜 후... 다시 읽으려면 맘 잡고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참, 퍼펙트 센스에서 그려내는 병의 진행과정에 대해 알고서 이 책을 읽는다면 퍼시벌이 마주한 진실의 장면을 비롯하여 이들이 어떤 순서로 병을 겪어가고 있는지 이해하기에 좀 더 수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