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은 종종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의식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연상 작용은 알아채는 것이 힘들었다. 란슬롯에게 그런 연상의 하나가 바로 바티칸의 교황청과 그의 옛 친구였다. 란슬롯과 그의 옛 친구, 두 사람 모두 가톨릭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바티칸에 가본 적도 없었다. 각 요소들 간의 무엇이 상호작용을 한단 말인가. 바티칸의 교황청을 마주한 지금도 란슬롯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친구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막 깨달은 참이었다.

보통의 관광객들이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교황청 내부로 남의 눈을 피해 스며들 듯이 들어가면서 란슬롯은 친구를 머릿속에서 떨쳐내기가 점점 더 쉽지 않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강한 연관이 대체 무에가 있단 말인가. 그는 방금 문을 여는 간단한 것마저 헛손질했다는 것에 실소했다. 문 위에 걸린 조그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주실 생각이라면 훗날 받도록 하지요. 란슬롯은 직사각형의 탁자가 놓인 방으로 들어섰다.

추기경과의 만남은 꽤나 지루했다. 이탈리아 억양이 강한 영어를 듣고 있자니 라틴어로 대화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실없는 생각이 란슬롯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이가 지긋한 추기경의 목소리는 낮고 느릿느릿했다. 란슬롯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애초에 추기경과의 만남이 이번 임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했다. 이렇게 비밀리에 그를 만나러 와야 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Amicus ad adras.”

란슬롯은 추기경의 눈을 보았다. 추기경은 미소를 지으면서 수많은 세월을 거친 주름을 만들어냈다. 란슬롯은 옛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밀짚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 호박색의 눈과 동그란 코, 조그만 입술. 그의 어린 시절도 벌써 옛날 일이 되었음에도 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추기경이 한 말을 따라했다.

“Amicus ad adras.”

추기경은 굳이 말리는 란슬롯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기도까지 한 다음에야 먼저 방을 나갔다. 꽤 고집이 센 양반이라는 생각을 뒤로 넘긴 란슬롯은 다시 눈을 피해 나갈 것을 생각하며 잠시 꾸물거렸다. 그때, 안경을 잘 쓰지 않는 그를 위해 멀린이 달아준 통신기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이 임무의 목표인물을 만나러 갔던 퍼시벌이었다.

“…닮았나?”
[아직 추기경과의 독대가 끝난 게 아닌가?]
“끝났어. 방금 그건 그냥 잊어줬으면 좋겠네. 교황청을 몰래 드나드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은 것 같아.”
[죄 짓는 기분이라도 들어?]
“오, 신성한 하느님의 집에 몰래 드나드는 것도 죄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20분 뒤에 봐.”

란슬롯은 몸을 일으키며 정면의 장식대를 보았다. 16세기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이 담긴 작은 액자가 장식대 위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아기 예수의 평화롭게 잠든 얼굴을 보고 다시 어린 시절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요소간의 연결고리는 저것이 아닐까. 란슬롯은 방을 나서면서도 친구의 얼굴을 눈앞에서 지울 수 없었다.


*


안경의 통신을 해제한 퍼시벌은 뒤를 돌아보았다. 란슬롯은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이들 사이에 서서 약간 피곤한 듯이 눈을 문지르며 서있었다. 침침한 전구 몇 개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이 어두컴컴한 공간을 비춰주고 있었다. 란슬롯은 퍼시벌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휴식시간은 충분해.”
“잘 됐네.”

창문을 통과한 빛이 란슬롯의 한쪽 얼굴만 비춰주었다. 퍼시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어 란슬롯의 오른쪽 뺨을 쓸어주자 란슬롯의 눈빛에 의문이 스며들었다.

“피.”
“아.”

란슬롯은 다소 얼빠진 소리를 냈다. 사실 그는 이번 임무 내내 어딘가 모르게 정신이 빠져보였다. 임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퍼시벌이 아니었더라면 위험할 뻔 했던 순간이 없지도 않았다. 그는 란슬롯의 등판이 찢어진 검은 코트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란슬롯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코트 마음에 들었었는데. 내가 검은색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퍼시벌은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 집은 독실한 종교인 집안은 아니었어. 내가 바티칸에 처음 온 게 언제인지 알아, 퍼시벌?”
“13년 전.”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퍼시벌은 란슬롯을 보았다. 란슬롯은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요만한 꼬맹이가 하나 있었는데, 어린 애 같지가 않았어. 사방을 뛰놀고 애교가 많고 그런 것들 말이야. 그런 게 없었지. 그런데 그 아이가 제일 좋아했던 게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 가는 거였어. 어릴 때는 비밀친구란 게 있다고들 하잖나? 그 애의 비밀친구는 교회에 있었지. 그 나이에 제 또래의 친구를 교회에서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신기하기도 하지. 꽤 귀여운 꼬맹이였어.”

란슬롯은 어둡고 좁은 골목이 큰 길과 만나는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꼬마 이야기를 했다. 퍼시벌은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큰 길에 들어서면서 질문을 던졌다.

“언제 그 친구가 죽었나?”

란슬롯은 짐짓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흘겼다.

“분위기 깨는데 선수야, 아주. 그렇게 긴 이야기도 아닌데 결말부터 물어보고. 김이 팍 샜으니 대답해주겠네. 그 꼬마의 친구는 꼬마를 만나고 몇 달 만에 죽었어.”
“유감이야.”
“먼저 물어봐놓고는.”
“투정은 그만하면 됐어. 거의 다 왔으니 가서 쉬기나 해.”

퍼시벌은 란슬롯을 앞으로 살짝 밀면서 호텔의 정문을 통과했다. 란슬롯은 그 뒤로 말이 없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퍼시벌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소파에 앉았다. 멀리 교황청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 바티칸이 란슬롯에게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퍼시벌은 란슬롯의 꼬마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교회와 바티칸의 연관성은 그럴 듯 했지만 강한 연결고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잠시 후에 란슬롯은 따뜻한 공기를 내뿜으며 나왔다. 퍼시벌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교황청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손은 브랜디가 든 잔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란슬롯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도 비밀친구가 있었어.”
“그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지.”
“‘나도 모르는 새’에 오해가 생길 수 있나?”
“가능하니 그랬겠지.”

란슬롯에게서 더운 공기가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퍼시벌은 손으로 잔을 흔들던 것을 멈추었다. 어린 시절의 무엇이 바티칸까지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란슬롯의 가운은 단단히 여미지 않아 앞섶이 헐렁하게 벌어졌다. 퍼시벌은 브랜디를 입에 모두 털어넣고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Ab antiquo. 더운 공기가 퍼시벌을 감쌌다.







+ 킹스맨 전력 두 번째 참가작.
주제는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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