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부자동네라고 소문난 이 일대에서도 가장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열렸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축적된 부만큼이나 자존심도 높은 동네의 이들도 자신들 중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 인정하는 브랜든 가의 저택이었다. 더군다나 브랜든 가는 세습작위를 가진 집안이었다. 그런 저택이라면 응당 최고급인 것만이 걸맞았다. 그래서 모두들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옷을 걸치고 가장 좋은 차를 타고 와서 없는 기품도 끌어 모으며 가식을 떨어댔다. 그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눈으로는 재빨리 상대의 외양을 훑어서 점수를 매기고, 최대한 우아하게 몸짓을 하려고 했지만 본연의 천박함을 숨기지 못했다.

 

찰스 브랜든은 파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로비까지 넘쳐 나온 것을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감미로운 음악이 묻힐 정도로 재잘재잘 떠드는 이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그들의 정수리에서 천박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찰스?”

엘리자베스.”

 

계단과 연결된 2층의 복도에 노란색의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가 서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찰스와 빈 손님방의 침실에서 마구 뒹굴었음에도 흐트러진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콧잔등을 약간 찡그렸다.

 

리즈라고 부르래도.”

리즈. 아무것도 아냐.”

벌써 파티에 질린 거야?”

 

엘리자베스는 웃으면서 찰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가까이 오자 새로 뿌린 향수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역겹게 느껴졌다. 찰스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몸을 조금 피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할 때는 몰랐던 천박한 냄새가 저 아래에 있는 이들만큼이나 진하게 났다. 조악한 싸구려 향수처럼 달콤하기만 한 향이 그가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가득 채워서 안 그래도 바닥을 치던 기분이 진창에 처박힌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엘리자베스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난간 아래를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찰스는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화가 났다.

 

찰스!”

 

씨발. 찰스는 욕지거리를 작게 내뱉으며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서 엘리자베스가 애타게 불러도 그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갈수록 가면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증스러운 모습들이 더 잘 보였지만, 그는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미안합니다.”

 

앞을 거의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어떤 커다란 사내와 부딪치고도 사과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까부터 속이 메스꺼웠다. 여전히 그는 숨을 거의 쉬고 있지 않았음에도 코끝에는 사탕보다 더 달아터진 냄새가 계속 맴돌았다. 어딘가에 이 역겨운 단내를 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아래층에는 사방에서 단내를 풍기는 사람들밖에 없었고, 찰스 브랜든은 거기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그는 어느 새 군중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었다. 모든 눈이 파티의 주최자를 향해 있었다. 거기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려고 노력하면서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어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았다.

 

 

**

 

 

겨우 구석진 테라스로 온 찰스는 그제야 숨을 틀 수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저택 안은 단내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불행히도 자정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짜증스러운 얼굴 위에 양 손을 얹고 마른 세수를 했다. 애초에 그는 이렇게 대규모로 파티를 열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파티는 모두 그의 아버지가 체면치레를 하려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연 것에 불과했다. 그의 아버지는 곧 하나뿐인 아들에게 작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찰스는 그것을 온몸으로 반대했다. 그가 보기에 작위라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겉보기에만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그런 것을 받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나았다.

 

사실, 찰스 브랜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도 남들 못지 않게 천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머리가 굳기 전부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맞으면 하룻밤 정도는 가벼이 보내고 돈을 흥청망청 쓰며 향락을 일삼았다. 술에 취해서 싸움에 휘말린 적도 여러 번이고 개중에는 경찰서까지 들락거릴 정도로 큰 사건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브랜든이라는 성씨가 주는 특혜 덕분에 오히려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종종 역겨움을 느끼곤 했다. 그가 한없이 엇나가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기는커녕 그래도 된다고 더 부추기는 것 같은 꼴이 너무나도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나 만나서 섹스하고 술을 마시고 약에 손을 대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남들이 아무리 손가락질 해도 그는 찰스 브랜든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해왔던 난봉꾼놀이는 저택 안에 있는 이들이 지금 당장 행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 천박한 수준이 달랐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거나 남을 깔아뭉개는데 사용하지는 않았다. 눈빛 한번에 상대의 모든 것을 간파한 것처럼 구는 것은 영 그와 맞지 않았다. 그것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보다도 더 질이 낮은 것이었다. 그는 기억이 있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에게 제 이름을 말하면 저를 대하는 눈빛부터가 달라지는 것을 진절머리 날 만큼 겪었다. 브랜든 공작의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지위를 갖고 있단 말인가. 그는 단지 찰스 브랜든일 뿐이었다.

 

안녕.”

 

찰스는 험악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오닉 양식을 본따서 만든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아치형태의 테라스 입구에는 호리호리한 더티 블론드의 남자가 유리잔을 들고 샴페인을 마시면서 서 있었다.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꽤 어려 보였다. 찰스는 그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아도 누구라고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단순히 스쳐가는 기시감이거나 전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 이들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그가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 남자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보았다.

 

, 그렇게 볼 필요는 없는데.”

넌 뭐야?”

뭘 것 같은데?”

질문을 한 건 나지.”

그래도 내게 답할 의무는 없어.”

 

두 사람은 신경전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찰스는 자신의 날 선 질문을 여유롭게 받아넘긴 남자를 잠시 쏘아보다가 다시 난간 밖을 내다보았다. 저택의 뒤쪽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진 숲이어서 까만 바다처럼 보였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찰스 브랜든도 소문보다 평범하네.”

 

찰스는 언제 다가온 건지 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돌아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찰스의 짜증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유리잔을 흔들어 보였다.

 

이거라도 마실래? 맛은 별로지만.”

 

남자는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너 진짜 뭐야?”

, 진정하고. 그냥 술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데. 마시라니까?”

필요 없어.”

그래, . 싫으면 말고.”

 

어깨를 으쓱한 남자는 잔을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놓았다. 찰스는 이 남자가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이상하다면 날개가 달린 것처럼 소문이 퍼지는 동네에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거나 스쳐 지나가면서 얼굴을 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는 전혀 이 남자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었다. 일단 입고 있는 검은색 수트와 검은색 보타이만 보더라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었다. 몸짓에서 보이는 기품에도 파티장 안의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나았는데 전혀 꾸며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필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았다.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네.”

 

남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더니 그는 찰스에게로 가까이 몸을 붙였다. 찰스는 움찔거리며 옆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바로 옆에 벽이 있어서 그저 몸을 한번 꿈틀거린 것이 다였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어린 아이들이 서로의 귓가에 소근거리는 것과 같은 말투로 남자가 속삭였다.

 

나는 악마의 아들이야.”

 

그에게서는 역겨운 단내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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