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는 양손으로 엉덩이부터 검은색의 치마를 쓸어내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세인트 에드워드 교회의 예배당에 양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나무의자가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 없었으나 그녀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서 앞을 바라보았다. 제단 가까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은 가비에게 검은색의 칼라 사이로 하얀 천의 색깔이 도드라지는 복장의 신부가 하는 말은 겨우 들릴 했다.

 

“하고 많은 장소에서 굳이 이런 곳을 고르는 안목이 있는지는 몰랐네.

 

가비는 불퉁한 말투와는 다르게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그녀는 희미하게 입가를 끌어올리고 있기까지 했다.

 

“유신론자 틈에 끼인 무신론자의 말을 제대로 들을 사람은 적어도 여기에는 없으니까.

“농담을 들으려고 말은 아니었어.

 

핀잔을 주듯이 말하며 가비가 오른쪽으로 눈동자만 움직여서 힐끔 보았다. 그녀의 옆에 약간 떨어져서 앉아 있는 남자는 몸에 맞게 재단된 푸른색 양복을 입고서 앞만 쳐다보고 있다가 가비의 시선을 느끼고 그녀를 보았다.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보다도 푸른 빛깔을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가비는 한쪽 눈을 찡그리더니 이제 기도를 시작한 신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신부가 기도하는 소리는 마치 중얼거리며 경을 외는 것처럼 들렸다.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언뜻 중간중간에 아멘이라고 하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는 같기도 했다. 모두가 신에게 기도하는 와중에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가비와 남자뿐이었다.

 

“5 만에 갑자기 나타난 거야?”

그동안 .”

아니.”

 

가비는 남자의 말을 아주 단호하게 끊으면서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5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손질된 검은색의 곱슬머리와 빤질빤질한 얼굴, 좋은 옷과 구두 같은 것들을 보면 그간의 안부는 알고 싶지 않아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갑자기 지금 남자가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어느 홀연히 사라져서 여태껏 생사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가 비록 그런 숨바꼭질에 탁월한 사람이긴 해도 가까운 동료였던 가비에게도 그러면 되었다. 가비는 걱정과 인내심을 그간 소진하고 말았기에.

 

“왜 지금 나타났는지 그것만 말해, 나폴레옹 솔로.

 

그래서 가비는 꽤나 냉정하게 말했다. 여전히 그녀는 제단 앞에 모여 있는 이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 나폴레옹은 잠시 대꾸가 없었다. 아마 그도 가비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기다리고 분노하고 실망했는지 알기 때문이었을 테다. 동베를린에서부터 로마까지 이어진 임무 이후로 엉클이라는 이름에 묶여 동료가 그들이 겉으로 보기엔 그저 무미건조해 보였을지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의 또다른 동료와 나폴레옹 사이에는 동료 이상의 것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게 3년이나 지속되던 중이었다. 나폴레옹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을 누가 가볍게 여길 있었을까. 심지어 웨이벌리도 나폴레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여 가끔 고민을 하곤 했던 가비는 알았다. 그러므로 가비는 알고 싶었다. 그간의 지긋지긋한 감정들이나 사건은 집어치우고 이제 와서 나폴레옹이 사라졌던 때처럼 나타났는지 그것만 알고 싶었다.

 

그것 외엔 관심 없어.”

이제 끝났으니까.”

 

나폴레옹은 작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말했다.

 

무슨 뜻이야?”

 

결국 가비는 나폴레옹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대번에 눈이 마주친 나폴레옹은 조금 지친 같기도 하고 후련한 같기도 미소를 지었다.

 

그대로야. 끝났다고.”

 

나폴레옹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비로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재촉하듯이 불러 보았지만, 그는 어깨만 으쓱거리고는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십자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처럼 한동안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았다.

 

좋아. 말이 없다면 갈게.”

 

오래 이어지고 있던 기도가 성호경으로 끝을 맺을 즈음까지 나폴레옹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가비는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조금 화가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가 뭔가를 기다리는 같기도 했으나, 가비에게는 5 동안 이미 바닥을 드러낸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가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벌써 예배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들었다. 그녀가 교회의 문을 나가려고 때까지 뒤에 남은 나폴레옹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붙잡힌 것처럼 그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분명 나폴레옹이 전하려고 하는 바가 있는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여 그런 것이었다. 아마 지금 문을 나서면 가비가 다시 그에게서 답을 듣기란 힘들 것이다. 그녀도 그걸 알기에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떠나도 될까?’

 

가비?”

일리야?”

 

입구 바로 앞까지 다다른 가비는 금방 그녀 위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든 일리야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떻게 거야?”

그야 여기에서 만나자고 해서.”

?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가비의 질문에 일리야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내가 불렀으니까.”

 

예배당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구에 있던 사람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리야는 미간을 찌푸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굳어져버렸다. 의자들 사이로 다리를 휘적거리면서 나오는 이가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믿을 없다는 듯이 굳은 그의 얼굴에 가비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나폴레옹이 감쪽같이 세상에서 지워졌던 5 동안 가장 드라마틱한 시간을 보냈던 이가 일리야였다. 그는 말로는 이미 포기하고 기억에서 지운 오래라고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남몰래 나폴레옹의 뒤를 캐려고 하고 있었고, 가비와 웨이벌리는 그런 그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런 일리야 앞에 이런 식으로 나폴레옹이 나타나는 것은 정말 벼락을 맞는 일과 같았다.

 

일리야, 그냥 가자. 그냥 가는 좋겠어.”

 

가비는 다급히 일리야의 짝을 붙들고 그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일리야는 석고상인 자리에 굳은 채로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크게 뜨인 눈동자는 이미 제게로 다가오는 나폴레옹만을 보고 있었고, 그의 귀는 예배당에 울려 퍼지는 나폴레옹의 발소리만 듣고 있었다. 일리야에게 가비가 팔을 잡아당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그냥 가자고 소리 쳐도 그에게는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뛰는 소리만이 나폴레옹의 발소리와 섞여서 고막을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자그마치 5 동안 이미 죽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려다가도 그게 아닐 거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일리야였다. 그런 그의 눈앞에 대상이 나타났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을 있을 리가 없었다.

 

가비의 부질없는 노력은 마침내 나폴레옹이 그들에게서 걸음만 남기고 가까이 왔을 때까지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일리야는 바로 앞에 나폴레옹을 거의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도 쉬지 않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맑은 하늘색 눈동자에 온전히 담기는 것은 교회 예배당의 신성한 광경 따위가 아니었다.

 

오랜만이네, 페릴.”

 

나폴레옹은 예전처럼 여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에게도 저를 질린 표정으로 보는 가비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도 자리에 못이 박힌 듯이 서서 저를 멍하니 보는 일리야만을 보았다. 일리야는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작은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지. 나도 알아. 하지만 이미 가비에게 말한 대로 끝이야.”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나는 그동안 CIA와의 관계를 비롯해서 내가 모아둔 재산까지 위험한 모두 처리하고 있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아선 됐기 때문에 혼자 하느라 오래 걸렸지. 그래, 사실은 걸릴 수도 있었겠지만, 운이 조금 따랐거든.”

 

이해할 없다는 표정을 가비의 말을 가로챈 나폴레옹이 약간 넋두리를 하듯이 말했다.

 

그게 위한 건데?”

나와 여기 딱딱하게 굳은 채로 있는 러시아인을 위한 거지.”

 

나폴레옹은 일리야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가비는 여전히 일리야의 한쪽 팔을 붙든 채로 서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지난 5년간 혼자 숨어서 일이란 완전한 자유를 찾는 것이었다. 15년형을 선고받은 그가 교도소 대신에 복역한 곳은 CIA였다. 어차피 형이 끝나면 CIA에서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기야 하겠으나, 그를 유용하게 써먹은 샌더스가 그냥 곱게 보내 주려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스파이가 이후에도 나폴레옹은 예전에 배운 손기술을 유용하게 써먹으며 뒷주머니를 두둑하게 챙기고 있었으니 더더욱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엉클이 결성된 이후로 3 동안 깊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일리야에게마저 아무런 언질도 없이 훌쩍 사라져서 문제를 혼자 해결했으니 이제 끝이라고 하는 태도가 마땅히 받아들여질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나폴레옹 스스로와 일리야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랬다. 나폴레옹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던 일리야가 전에 없이 술에 잔뜩 취해 몸을 웅크리고 불쌍하게 울던 날을 가비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가끔 일리야의 간헐적 폭발 장애가 심해질 때면 십중팔구 나폴레옹과 어떤 관련이 있었다. 나폴레옹도 홀로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아무 소식도 없는 그를 기다리기만 하던 이들만큼이나 그가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는 없었다.

 

내가 검은 옷을 입고 여길 왔는지 알아? 당신이 드디어 죽었다는 소식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했거든.”

 

가비는 매서운 눈초리로 나폴레옹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일리야의 팔을 붙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어느새 풀려 있었다.

 

정말 화가 .”

 

또박또박하게 말한 가비는 그대로 돌아서서 구두 소리만을 남긴 교회를 빠져 나갔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폴레옹은 그녀를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그도 어차피 모두가 환영해 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과 연인으로 지냈던 일리야가 모든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어차피 자신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고, 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반응은 당연히 발생할 있는 과정에 불과했다. 물론 일리야가 냉담하게 대한다면, 나폴레옹은 조금 마음이 아플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모든 그저 거쳐가는 것뿐이었다.

 

일리야.”

 

나폴레옹의 부름에 일리야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나폴레옹을 보았다. 나폴레옹은 가비를 대할 때와는 달리 이마에 주름을 만들고 미소도 지운 채였다. 일리야가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에 질린 사람처럼 보여서 그도 덩달아 불안해지는 같았다. 나폴레옹은 일리야의 손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떨리고 있을 알았던 손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나도 네가, 네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도 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일리야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작게 들렸지만, 나폴레옹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그렇지 않아.”

그랬나?”

 

일리야의 질문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곧장 대답하지 못하는 대신에 일리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일리야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말은 했어야지.”

 

잇새로 짓씹듯이 중얼거리는 말에 나폴레옹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가비는 과거의 이야기는 모두 집어치우라고 했지만, 일리야는 그렇지 않았다. 어릴 기억에 사로잡혀 평생 고통받고 있는 그에게는 과거가 중요했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 아무것도 모르고 떨어져서 홀로 괴로워해야 했던 시간. 그런 것들이 일리야에게는 중요했다. 그는 과거에서 떨어져서 사는 방법을 몰랐고, 또한 함께가 아닌 것을 두려워했다.

 

나폴레옹은 그제야 억지로 막아 두었던 후회가 천천히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일리야가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이런 식의 재회를 계획한 것도 바로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괜한 짓을 했나.’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카우보이.”

그래.”

 

나폴레옹은 대답을 하면서도 일리야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러자 일리야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폴레옹.”

 

일리야의 어깨만 간신히 보고 있던 나폴레옹은 겨우 천천히 일리야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본래 색이 옅은 일리야의 눈동자는 고요하고 어두운 예배당 안에서 잿빛으로 보였다.

 

그래, 일리야.”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낮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나폴레옹은 결국 일리야를 품에 가득 끌어 안았다.








+맨프롬엉클 개봉 1주년 기념 솔로일리야 합작에 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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