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에서는 뭐든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킹스맨이 필요한 일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이 모든 것을 알고 일처리에 동원되었다. 같은 킹스맨의 동료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서로의 일에 대해 구태여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관례와도 같았다.

그래서 퍼시벌과 란슬롯은 좀 더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동료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그런 그들에게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아서는 그들에게 경고를 한 적이 있었다.

‘상대에게 지나친 관심을 표하지 말고 서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공유하지 말라.’

조언도, 충고도 아닌 명백한 경고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서의 경고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서도 더 이상의 경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늘 두 사람을 예리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퍼시벌은 가끔 그 시선을 의식하며 아서를 돌아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그 시선의 방향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서의 날카로운 눈빛이 향한 사람은 그가 아닌 란슬롯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한, 란슬롯은 한 번도 아서를 포함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란슬롯이 아서의 시선을 평소처럼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퍼시벌, 자네 취미가 사색하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사람 앞에 두고 계속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거야?”

퍼시벌은 란슬롯의 웃는 눈을 보았다. 짐짓 언짢은 척하는 목소리와 달리, 란슬롯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퍼시벌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선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고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표정을 했다. 퍼시벌은 그가 하는 양을 다 보고도 잠시 말이 없었다. 란슬롯은 인내심 있게 퍼시벌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졌어.”
“그래? 고쳐야겠네. 그 외에는?”
“옷 색깔이 요란해.”

란슬롯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삶에서 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었다. 때로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의 위험한 일을 하는 그들의 직업상, 일반사람들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그런 중에 드디어 란슬롯으로서의 삶과 일반사람들의 삶 사이에 교집합이 생기는 날이었다. 나름대로 기뻐할 만한 날이 아닌가. 란슬롯은 다시 생각에 빠지려고 하는 퍼시벌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아도 되잖아. 내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퍼시벌은 깊게 숨을 내쉬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감상적이진 않아.”
“좋지 않은 생각을 한 건 맞는 것 같은데.”

퍼시벌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란슬롯은 여전히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눈빛은 읽어낼 수 없게 단단했다. 퍼시벌은 그 눈빛을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해도 그 눈빛만큼은 속으로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란슬롯의 평소 모습을 보고 그를 쉽게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하나도 그를 파악했다고 할 수 없었다. 란슬롯은 퍼시벌에게도 숨기는 것이 많았다. 퍼시벌이 란슬롯에게 숨기는 것이 많았던 것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해. 남들은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서야 겨우 하는 일을 나는 평균기대수명의 반도 살지 않았는데 하고 있는 거라고.”

이번에도 퍼시벌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란슬롯은 잠시 퍼시벌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퍼시벌의 말마따나 옷을 갈아입으러 간 것이었다. 퍼시벌은 반쯤 열린 문을 보았다.

“사진 하나에 거창하기는.”
“뭐라고?”

문이 반쯤 열린 방 안에서 란슬롯이 외쳤다. 퍼시벌은 란슬롯의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닌데. 그는 들고있던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펼친 채로 손에 힘을 주어 잡고 있었더니 책장에 손자국이 났다.


*


사실, 아서의 경고는 합당한 것이었다. 아서는 지나친 간섭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본 후에 매우 합리적인 경고를 했던 것뿐이었다. 퍼시벌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다만 이해한 척 하고 있었다.

비록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모습이었지만 아서의 눈빛은 여전히 실제로 마주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퍼시벌은 일부러 그의 시선을 피해 맞은편에 보이는 갤러해드를 보았다. 갤러해드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퍼시벌은 결국 제 앞에 놓인 술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망할 기술력이 너무 좋은 것이 문제지. 퍼시벌은 미동도 없는 액체의 표면을 뚫어져라보았다.

“란슬롯은 아주 훌륭한 킹스맨 요원이었습니다.”

안경을 통해서 들려오는 아서의 목소리가 이질적이었다. 퍼시벌은 팔걸이에 걸친 손끝을 움찔거렸다. 비보를 전해들은 것이 10분 전이었던가, 1시간 전이었던가, 하루 전이었던가. 그는 장례식에 쓰일 영정사진을 상상해보았다. 검은 리본이 드리워진 흑백사진은 짙은 색의 액자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으려나.

“란슬롯을 위해.”

분명히 무슨 사진이 쓰일지 퍼시벌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 사진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방금 머릿속에 떠올렸던 영정사진은 그가 기억하는 사진이 아니라 그가 상상한 사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그가 무슨 옷을 입었더라? 넥타이 색은 어땠지? 퍼시벌은 자신의 움직임에 갈색의 액체가 표면에 살짝 물결을 그려내는 것을 보았다.

“란슬롯을 위해.”

독한 액체는 속을 파먹는 것처럼 타고 내려갔다. 잔을 조금 소리 나게 탁자 위로 올려놓은 퍼시벌은 여전히 약간 혼란스러웠다. 추모식은 끝났다. 안경을 벗으면서 다시 마주친 갤러해드의 눈빛은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빈 잔이 있었고 그 공간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퍼시벌은 조금 절망스러워졌다. 시간이 얼마나 됐다고.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킹스맨 전력 주제 카메라/사진 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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