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고 있었다. 거실 옆으로 나있는 짧은 복도에서부터 아기의 울음소리가 서럽게도 울렸다. 안전가옥과 비슷하게 생긴 이 공간에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들릴 이유도 없는 소리였다. 나폴레옹은 아까 짐 가방을 들고 이 집에서 나오던 한 부부를 떠올렸다. 짐작컨대 그 부부는 일리야의 조력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방을 들고 이 집에서 나왔다는 것은 더 이상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뜻했다. 이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그 부부의 아이라면 그들이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인 일리야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떠났을까? 나폴레옹은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보았다. 애초에 상관관계가 성립할 수 없지 않은가. 무슨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을 것임에 분명했다.

 

잠깐!”

 

눈썹을 까딱하던 나폴레옹이 갑자기 복도 안쪽을 향해 움직이자 굳은 채로 앉아있던 일리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급하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잡힐세라 빠른 걸음으로 걷는 그를 당장 잡아 세우지는 못하고 팔만 그쪽으로 어정쩡하게 뻗은 채였다. 찰나의 순간에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하여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였다. 이대로 나폴레옹이 문을 열고 울고 있는 아기를 보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아기가 누구의 아기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누구의 아이이며 왜 여기 있다고 얘기를 할 것인지. 당장에 변명할 거리만 해도 수두룩했다. 일리야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멈춰 서서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할 수조차 없었다.

 

일리야가 겨우 나폴레옹을 쫓아서 갔을 때는 이미 그가 방에 들어간 이후였다. 조그만 침대에 누워서 울고 있는 조그만 아기를 한 걸음 떨어져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나폴레옹의 뒷모습에 어쩐지 혼란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일리야는 문손잡이를 꼭 잡은 채로 더 이상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 있을 아이의 눈은 완연한 푸른색이고, 날 때부터 꽤 자라있었던 갈색의 머리카락은 곱실댔으니 부모가 누구인지는 보는 순간 알아챌 수 있을 터였다. 아이도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 호기심이 동한 모양인지 아까보다 울음소리가 잦아들어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가 제 아비인 것을 알아보았을까? 일리야는 양 눈썹의 끝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점점 공간 속에 적막이 자리를 잡으며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이 자신과 농도가 비슷한 파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움찔하며 한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냈을 때였다. 그 작은 소리에 일리야 역시 덩달아 놀라서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여 애꿎은 문손잡이만 더 세게 쥐어서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단단한 문손잡이가 아니었다면 그의 손아귀에서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손끝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던 일리야가 맥이 빠진 사람처럼 손에 힘을 탁 풀고 손잡이를 놓은 것은 나폴레옹이 한 걸음 아이에게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보고서였다. 요람에 가까이 붙어 선 그는 허리를 숙이고 한 손을 뻗어 아이의 눈물로 얼룩진 발간 뺨을 어루만졌다.

 

아가, 왜 우니?”

 

아직 울음기가 남아 칭얼대는 소리를 내는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일리야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는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작년에 이미 그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애정이 담긴 웃는 눈과 저를 달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널뛰던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아 차분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사지를 꼬물대면서 물기가 묻은 기다란 속눈썹을 팔랑이는 아이의 시선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폴레옹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도 저를 달래는 눈빛과 목소리에 담긴 따뜻함을 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일리야는 들이켠 숨을 여전히 폐 속에 가둔 채로 아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던 나폴레옹이 아예 아이를 들어 안는 광경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처음부터 그가 목숨을 걸고 도망쳤던 이유는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실 외에는 소용이 없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일리야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보다는 이상하게도 짐을 덜어낸 것처럼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밀을 지키며 도망 다니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닌 탓이었다. 당연히 마음을 먹었던 때부터 짊어지고 갈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이었는데도 막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황망하기까지 하여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일리야는 그새 울음을 그친 아기를 안고 있는 나폴레옹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잘못 생각했었던 걸까? 그제야 일리야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눈에 절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그는 왜 제 눈에 눈물이 고이는지 알 수 없었다.

 

일리야.”

.”

 

일리야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대답했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아까 아이를 달랠 때와 같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눈가에 열이 확 몰렸다.

 

이름은 있나?”

 

방금 전과 달리 훨씬 덤덤해진 목소리였다. 일리야는 나폴레옹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않고 고개를 계속 숙인 채로 여러 번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간신히 빨갛게 충혈된 눈을 떴다. 그러자 바닥을 향한 그의 시선에 자신을 향해 돌아선 나폴레옹의 구두 끝이 보였다. 나폴레옹이 아기를 토닥이는 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사샤.”

사샤. 그렇군. 사샤.”

 

일리야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나왔지만, 나폴레옹은 용케도 그것을 알아듣고 따라했다. 사샤, 네 이름이 사샤구나. 일리야는 고개를 들어 나폴레옹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품에서 하품하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절대 잊지 않게 마음 속에 새기려는 것처럼 연신 이름을 중얼거렸다. 사샤, 사샤, 사샤, 사샤.

 

사샤는 자신을 부르는 나폴레옹의 낮고 포근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기로 했는지 곧 쌔근쌔근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요람 속에 눕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뒤돌아서지 않고 아이를 눕힌 요람의 한쪽을 양 손으로 짚으며 그대로 서 있었다. 일리야는 말없이 그 뒷모습을 아직 충혈되어 있는 눈으로 물끄러미 보았다. 나폴레옹의 너른 등판 위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것 같았다. 일리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었지만 그것을 말로 만들어 꺼내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 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긴 해도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일리야는 나폴레옹이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일리야, 다시는.”

 

한참 후에야 나폴레옹은 입을 열고 작게 숨을 들이쉬고서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낮아진 목소리였다. 일리야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다시는 혼자 사라지지 마.”

 

끝이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말을 끝맺는 순간 일리야의 눈가에 몰렸던 열기가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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