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는 가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오랜 시간을 있다 보면 까만 눈꺼풀 속에 무언가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것들은 깨진 유리조각들을 다시 테이프로 이어붙인 것처럼 편린들을 얼기설기 엮은 모양새였지만 나름대로의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희미하기도 하고 또렷하기도 한 그것들이 정말 꿈일 리는 없었다. 일리야는 잠을 잘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고, 그래서 그는 꿈을 꾸는 그 때가 좋았다. 마치 평범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평범함이 아닌 특별함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적어도 일리야에게는 그리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에 제정신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때때로 정신을 차렸고, 때때로 꿈을 꾸었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간과 꿈을 꾸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의 인생에서 기억이란 큰 의미가 없었다. 그의 기억은 그가 꾸는 꿈처럼 조각나있었고, 그 조각들에 새겨진 것은 온통 붉은 고통뿐이었다. 기억은 늘 똑같이 시작했다. 식도가 온통 다 불에 타는 것 같은 강렬한 통증에 몸부림치는 것. 눈을 뜨면 사위가 온통 붉은색으로 보였고, 일리야는 당장 그 고통을 끝내는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도저히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무언가에 몸이 단단히 묶여있기라도 한 것처럼 일정 걸음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시뻘겋게 보이는 시야에는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 곧 목을 긁는 것처럼 아프게 하는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그 자리에 모로 쓰러져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일리야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기를 바랄 정도인데도 오히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정신이 또렷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에 잠식당하던 일리야가 더 이상 우는 소리도 내지 못할 때쯤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항상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다가와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로 일리야의 이름을 불렀다.

 

일리야, 일리야 쿠리야킨.”

 

그러면 일리야는 신기하게도 고통에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바닥에 쓰려져있는 그를 내려다보느라 그림자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남자는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넘긴 채였다. 일리야는 코를 킁킁거렸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아까보다 더 강렬하게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 남자는 냄새에 반응하는 일리야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웃고는 검은 액체가 뚝뚝 흐르는 자신의 팔 한쪽을 내밀었다. 그 팔을 붙잡고 냄새를 맡던 일리야는 아까부터 나던 냄새의 근원이 바로 거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쯤에 일리야는 깨닫고는 했다. 그 액체가 무엇이건 간에 역한 비린내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달콤하고 향기로워서 당장 맛보지 않으면 그가 겪는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허겁지겁 그 액체를 들이마시는 일리야를 보던 남자는 다른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작게 웃었다. 일리야는 자신을 쓰다듬는 그 손바닥의 체온과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좋았다. 그래서 그는 딱 필요한 만큼만 액체를 들이마신 다음에는 남자의 손을 잡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손등에는 액체가 묻은 그의 입술 자국이 남곤 했다. 남자는 그 입술 자국을 문질러 지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리야의 기억을 끝맺는 질문을 했다.

 

일리야 쿠리야킨, 내가 누군지 기억해?”

 

일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폴레옹 솔로.”

 

일리야는 이제 제 앞에 우뚝 서 있는 나폴레옹의 푸른색 눈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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