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간다는 소문을 모으는 자였다. 혹자는 사람들의 입과 시간을 거치며 몸집을 불린 소문이란 본디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으므로 소문을 모아 보았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었다. 어느 유명한 탐정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을 모두 없애고 남은 것만이 진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나폴레옹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소문에 덕지덕지 붙은 것들을 모두 쳐내고 그 속의 알맹이를 볼 줄 안다면 소문은 정보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이 모으는 것은 사실 소문 안에 숨어 있는 알짜배기 정보였다. 그에게는 그런 정보가 아주 중요했다. 타인의 것을 가져다가 더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이 바로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기에 어디에 사는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위험부담이 매우 컸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소문들 속에서 아주 신중하게 정보를 골라냈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으면서 그도 더 이상 정보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분야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렇다고 그가 방금 모스크바 근교의 작은 도시인 끌린에서 알아주는 대부호인 쿠리야킨 가에서 벌써 200년째 전해져 내려온다는 그림을 성공적으로 훔쳐냈음에도 별 감흥을 보이지 않은 이유가 지나친 자부심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시시한 표정으로 돌돌 말아서 가져온 그림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엎어 놓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끔찍한 괴물이 그려져 있다느니 귀신이 들려서 그림이 움직인다느니 하는 온갖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무성한 것과는 달리, 그림이 일리야 레핀의 생생한 화풍이 그대로 담긴 젊고 아름다운 남자의 초상화에 불과하다고 해서 나폴레옹이 그림에 실망하는 일이란 결단코 일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미적 기준에 그 대상이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매력적인 정보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10년 동안 다져진 그의 안목은 언제나 최상의 것을 골라낼 줄 알았고, 그는 그렇게 골라낸 예술품을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가 실망한 대상은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쿠리야킨 가였다. 볼셰비키 혁명과 그 이후의 공산당 체제에서도 살아남은 그 대단한 쿠리야킨 가문에서 저 아름다운 그림의 가치를 별로 높이 사지 않는 것 같아서 나폴레옹은 화가 났다. 그가 대저택에 잠입하여 그림을 대면하기까지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걸렸는데, 이는 화가의 명성과 괴담 때문에 드높아진 그림의 가치와는 걸맞지 않게 경비가 별로 삼엄하지 않은 탓이었다. 오히려 황당할 정도로 엉성하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림을 지키는 것은 오직 붉은 색의 벨벳으로 만든 베일이 전부였고, 설마 하니 나폴레옹이 조심스럽게 액자를 떼어내도 알람이 울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항상 아름다운 것들은 그 가치를 모르는 자의 손에 있지?”

 

작게 중얼거리던 나폴레옹은 탁자 위에 올려둔 종이를 힐끔 보았다. 아주 잠깐 본 것이지만, 그림 속의 남자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어두운 색의 두꺼운 모피를 두르고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슬라브인의 외형적 특징을 가진 대상. 눈앞에 아까 본 그림 속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던 나폴레옹은 곧 한숨을 쉬며 여태 끼고 있던 검은 가죽 장갑을 손에서 벗겨냈다. 어쨌거나 쿠리야킨 가의 사람들이 그림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 자명했다. 그들이 그림의 행방을 수소문할 때쯤이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아서 나폴레옹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탁자에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똑바로 뒤집었다. 그러자 그가 아까 보았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다시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 드러났다. 밀짚 색깔의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카락 아래의 창백한 얼굴 위로 빛나는 푸른 색의 눈을 하고 널찍한 가죽 의자 위에 앉아서 길쭉한 팔과 다리를 편하게 늘어뜨린 러시아 남자. 나폴레옹은 저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면을 보는 게 아니었나?”

 

아까 그가 저택에서 그림을 보았을 때는 그림 속의 남자가 분명 정면을 보는 것 같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남자의 시선이 오른쪽 아래를 향해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림 속 남자의 시선을 따라서 그림의 아래쪽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바닥에 늘어뜨려진 긴 망토 같은 모피의 끝자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나폴레옹은 다시 남자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뇌리에 스치는 말도 안 되는 오싹한 그림에 대한 소문에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고는 그림을 다시 내려놓았다.

 

, 소문은 소문이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선 나폴레옹이 본의 아니게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소문에는 이미 진실이 들어 있지.”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이 아프로디테의 가호로 갈라테이아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을 감정이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본 일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그 대부분에 속했다. 그는 예술품을 예술품 그 자체로서 사랑했지 절대 그 예술품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가끔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주 아름답기는 했으나, 그는 그들을 결단코 예술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일뿐이었기에.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피그말리온이 왜 자신의 갈라테이아가 생명을 얻은 것에 기뻐하고 평생 그녀를 사랑했는지도 깨달아야만 했다.

 

, 이런.”

 

나폴레옹은 거의 기절할 뻔한 것을 겨우 추스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이제 막 완전히 종이에서 몸을 다 빼낸 남자가 그를 따라 눈을 깜빡였다.

 

난 신은 믿지 않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신은 아냐.”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입술에서 나온 말과 목소리에 나폴레옹이 뭐라고 대답할 것처럼 입을 벌리고 숨을 작게 들이쉬었으나 곧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털이 잔뜩 달린 모피를 두르고 있는 남자가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나폴레옹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나폴레옹이 저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남자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또 한 걸음 성큼 더 다가서더니 주위를 한 바퀴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맞추는 남자는 가까이에서 보니 그림을 볼 때에 이미 알 수 있었 듯이 정말로 몸이 길쭉길쭉하고 키가 컸다. 그의 노란 머리카락과 밝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화가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것처럼 정말로 그림 같았고, 반듯하게 떨어지는 얼굴 선도 그러했다. 나폴레옹이 이 남자가 그림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도 그는 남자가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봐, 놀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질문을 해야겠군. 넌 누구고, 여긴 어디지? 딱 보아도 쿠리야킨 가의 저택이 아닌데, 그들이 드디어 나를 팔아 넘기기라도 했나?”

 

나폴레옹은 남자의 질문에 그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일리야 레핀은 실제로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이나, 시간대가 맞지 않지요... 그런 건 그냥 감안하고 봐주심이... 개인적으로 일리야 레핀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인물화를 좋아하여 넣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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