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콜린스.

인사를 생략하는 걸 이해해주기 바라. 이건 어차피 양식 따위를 지켜서 쓰는 편지도 아니고, 너에게 닿지도 못할 거야. 그럼에도 이 엉망진창인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에게 꼭 해줬어야 하는 말이 이제서야 기억났기 때문이지. 진작에 내가 너를…. 아니, 아니야. 사실은 말이지. 난 계속 기억하고 있었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잠깐만 방심하면 혀 끝으로 튀어나가려던 말은 하나하나 모두 뇌에 새긴 것처럼 선명해.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항상 이번에는 말 해야지,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꼭 해야 해.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결국 다음으로 미루고 미룬 단어들은 잔뜩 쌓여만 가서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지. 댐처럼 가두지 말고 조금씩 흘려 보냈더라면 지금에서야 이렇게 터질 것처럼 아프진 않았을 텐데. 너는 늘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곤 했지. 스핏파이어를 타고 있지 않아도 하늘에 둥실둥실 뜬 것처럼 느낄 만큼. 넌 정말 사람보는 눈이 없어.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냐.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속으로 감추기만 했던 비겁한 놈일 뿐이지. 이것 봐, 내게 남은 건 이제 후회뿐이야. 망할 후회뿐이라고. 여기선 네 이름을 불러도 너에게 결코 닿을 수가 없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길게 줄을 이어도 네가 있는 곳까지는 절대로 닿지 않겠지. 그래, 어쩌면 그래서인가 봐. 담아두었던 말들이 물처럼 흘러넘치는 거 말이야. 이젠 아무리 흘려보내도 네 발치에도 못 갈 테니까. 네가 내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나도 입을 열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건 아마도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일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네 마음을 모른 척했던 거 말이야. 난 다 알고 있었어. 그래, 젠장. 난 다 알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망할! 난 다 알고 있었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콜린스, 콜린스,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빌어먹을, 아니야. 너는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돼. 여긴 너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냐.

콜린스, 네가 보고 싶어. 난 널

 

파리어의 글씨는 뒤로 갈수록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마지막 문장은 낙서처럼 길게 그어진 선으로 끝났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급박하게 갈겨쓰다가 그마저도 채 제대로 끝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용케 편지를 다 읽어낸 콜린스는 누런 종이가 사각이는 소리를 낼 정도로 손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종이를 탁자 위에 다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힘을 주어 세게 끌어 안지도 못한 채로 엉거주춤하게 들고 있었다.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닦을 생각도 못하는 듯했다. 그저 흐려지는 시야 때문에 자꾸만 눈을 깜빡이면서도 편지 아닌 편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 땅이 불바다가 되고 하늘이 다 무너져 내려도 이만큼 절망스럽고 참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절절한 고백이 곧 유언인 것은 너무 가혹했다.

전쟁이 드디어 콜린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