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전쟁이다.

 

파리어는 두 해 전에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타이푼을 타고 이라크와 시리아 상공을 날아다니던 때보다도 동거인과 함께 하는 지금의 아침이 긴장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단단히 밴 그가 아직도 단잠에 빠진 동거인의 뺨에 키스를 하며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건 물론 행복한 일이었다. 간밤의 격렬했던 흔적이 널린 바닥을 치울 때는 이제 와서 민망한 동시에 흐뭇했다. 나란히 컵에 든, 색깔만 다른 칫솔을 볼 때면 남은 평생을 이 사람과 살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는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에 겨운 시간만 계속 될 거라는 믿음이 그의 마음 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서로 수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몸을 섞었던 지난 밤도 꿈인 양, 파리어는 아직 동거인이 있을 침대 앞으로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지레 한숨부터 쉬었다. 군데군데 붉은 자국이 남은 몸을 푸른색 이불로 칭칭 감고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그의 동거인은 조금 불행하게도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어려워했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는 어깨를 흔드는 정도론 어림도 없었다. 으레 아이들한테 하듯이 어르고 달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대충 웅얼거리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커튼이 걷힌 창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은 말간 얼굴에 파리어는 피식 웃음을 짓다가도 이내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별로 소용없을 것을 알면서도 동거인의 짧은 금색 머리칼을 몇 차례 쓸어 넘기며 조심스레 팔뚝을 붙잡고 흔들었다.

 

콜린스, 일어나야지.”

 

이미 파리어가 예상했던대로 콜린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가 조금 더 세게 어깨를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금발이 사락거리며 베개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지고, 이불이 미끄러져 헐벗은 몸이 드러나는데도 아직 꿈 속을 헤매는 콜린스의 눈꺼풀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따금씩 그가 손가락 따위를 움찔거리긴 했으나, 파리어는 시계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침으로 씨리얼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콜린스가 5분내로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아침은커녕 오히려 두 사람 다 지각을 면치 못할 터였다. 파리어는 난감한 표정으로 계속 째깍거리는 초침과 콜린스의 동그란 뒤통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서 잠시 구글에 사람을 효과적으로 깨우는 방법이 무엇인지 검색이라도 해야겠다는 실없는 생각까지 한 후에야 그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되었다.

 

일단 그는 제대로 된 부엌이라기엔 좁은 아일랜드 너머 작은 싱크대와 찬장 두어 개가 전부인 곳으로 가서 그릇과 숟가락 두 쌍, 우유와 씨리얼 상자를 꺼내 두었다. 그 와중에도 콜린스를 크게 부르는 부질없는 짓을 한 그는 금세 침실로 돌아와 시계를 보았다. 이제 그들이 씨리얼이라도 먹고 집을 나설 수 있는 마지노선은 약 3분 남아 있었다. 파리어는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콜린스를 내려다보며 뭔가를 결심한 듯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콜린스의 몸에 반쯤 걸친 이불을 걷어냈다. 그러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콜린스의 몸이 다 드러났다. 파리어는 그 위에 조심스레 올라탔다. 좁은 면적에 실린 하중에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움푹 파였지만, 콜린스는 제 위로 파리어가 살짝 걸터앉아도 한쪽 눈썹을 찡그린 게 다였다. 그러니 오히려 파리어는 일종의 오기와 사명감에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다소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파리어는 한쪽으로 돌아누운 채 색색 숨소리를 내는 콜린스의 마른 뺨에 부러 소리를 크게 내며 입을 맞추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는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퍼주는 것처럼 둥근 턱선에도, 살짝 붉은색을 띄는 귓불에도, 움푹 들어간 목선을 따라서도, 곧게 뻗은 어깨 위에도 차례로 소리 내어 키스했다. 도중에 햇볕에도 잘 타지 않아 유독 흰 피부에 드문드문 희미하게 남은 발간 자국을 만나면 혀끝으로 간질이기까지 했다. 파리어는 자신의 입술이 피부에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어쩐지 외설스럽게 울리는 소리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제 그는 침대를 짚고 있던 한 손을 들어 말랑한 콜린스의 귓불을 조물거리다가 그대로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뜨렸다.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남기고 움직이자 길이 나듯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이 보였다.

 

이쯤 되면 파리어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콜린스가 잠이 다 달아난 눈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으리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뽀얀 엉덩이에 닿을 때까지 움직이며 재차 콜린스의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고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갑자기 콜린스가 온몸을 퍼드덕거리며 파리어를 밀쳤다.

 

, 일어났어요! 일어났다고요!”

 

콜린스는 불타는 것처럼 시뻘개진 얼굴로 외쳤다. 뒤로 밀려난 파리어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목덜미까지 빨갛게 될 정도로 당황한 콜린스의 표정이 아주 볼 만했다. 밤에 조금만 분위기를 타도 대담하게 먼저 다리를 얽을 줄도 알면서 이른 아침에 파리어가 이 방법을 쓸 때마다 맥을 못 추는 게 그제야 제 나이답게 귀여워 보였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다르다는 사실이 이럴 때에나 확 와닿곤 하여 웃는 파리어에게 콜린스가 미간을 팍 찌푸렸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진 못했다.

 

파리어는 미소를 갈무리할 생각도 없는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아직 그들에게 1분의 여유 시간이 남아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파리어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근 시간의 러시 아워에 걸려 늦기라도 하면 그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들의 상관도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될 터였다. 파리어는 콜린스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지각 안 하려면 빨리 씻고 나와. 식빵이 없어서 어차피 씨리얼이지만, 커피 정도는 내려줄게.”

정말이지.”

깨워 줘서 고맙다고?”

말이나 못하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도 비척거리며 도움을 받아 일어난 콜린스가 화장실로 가는 것까지 지켜본 후에 파리어는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똑같이 생긴 하얀색 머그컵 두 개를 꺼내 커피포트 옆에 놓으며 그가 뒤늦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전쟁에 비하기에 이런 일상은 지나치게 사소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땅 위가 얼마나 처참한지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았다. 이런 게 전쟁이라면 진짜 전쟁은 지옥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런 아침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