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경험이 있어 공포심을 가진 분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가끔 콜린스는 온몸에서 꼬질꼬질한 물비린내를 풍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갇히는 꿈을 꾸었다. 비릿한 냄새를 맡는 것으로 시작하는 꿈에서 그는 앞사람의 까만 뒤통수를 빤히 보며 있었다. 칙칙한 색깔의 육군 제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서 구부정한 자세로 미동도 없는 남자를 한참 보다 보면 콜린스는 자신이 속에 있다는 것을 한발 늦게 알아채곤 했다. 그러면 굳이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그의 앞에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방이 하얀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있었다. 다소 낮은 천장을 제외하면 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넓은 그곳이 어디인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콜린스에게는 그곳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비록 없이 광활한 곳임에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사람과 움츠린 어깨를 맞대고 있어야 하는 홀로 조종석에 구겨져 앉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콜린스는 씁쓸한 맛이 나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축였다.


그의 전후좌우로 길게 도열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처럼 창백한 얼굴에 지치고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을뿐더러 희망이나 기대감 따위는 잠시라도 들어앉지 못할 만큼 공허함만이 자리를 차지했다. 귀가 멀었다고 착각할 만큼 적막한 탓에 수그린 어깨 위에서는 침묵이 무겁게 그들을 짓누르는 듯했다. 콜린스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를 연상하다가 그렇다면 제우스가 자신을 포함한 이들을 여기에 몰아넣은 이유가 무엇일지 기억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머릿속이 것처럼 아무것도 떠올릴 없었다. 다만,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추측만 있을 뿐이어서 그는 반쯤 체념하듯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죄목이 무엇이건 간에 이미 그도 수많은 아틀라스 중에 하나였다. 그러자 이제서야 등에 짊어진 이름 모를 죄가 느껴져, 역시 다른 이들처럼 절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렸다.


그런데 그때 발치에 흥건하게 고인 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선가 물이 흘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의아함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쪽 발을 살짝 들자, 찰박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퍼져 나갔다. 다소 크게 소리에 당황한 그가 재빨리 주변을 보았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짧은 사이에 물은 위로 차올라 있었다. 특색 없이 까만 구두의 주둥이에서 넘실거리던 것이 금방 발목을 적시더니 금세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 높이에서 찰랑거렸다. 콜린스는 제자리에 서서 손으로 물을 올렸다.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 때문인지 맑게 바닥까지 보이는 물에서도 소금기가 서린 바닷물의 냄새가 났다.


북해에서 흘러온 물일까?’


분명 꿈일 텐데 몸을 반쯤 삼킨 물의 온도가 너무 차가운 나머지 뼈가 시린 같았다. 왠지 모를 기시감에 콜린스는 손바닥에 담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애썼으나 정확히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한참을 손만 노려보던 그는 결국 생각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손가락을 펼쳐 물을 모두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젖은 손을 대충 상의에 문질러 닦다가 여전히 사위가 지나치게 적막하다는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것은 모두가 탈출하기 바쁜 광경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의지도 무엇도 없는 것처럼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그새 가슴까지 닿은 수위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동요할 만도 한데, 눈동자에 일말의 감정을 담아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콜린스는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작게 숨을 들이켰다. 수없이 꿨던 꿈이니 사실은 처음부터 알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은 타이탄족이 아니라 오히려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두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한낱 사형수들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감히 끝없는 고통을 받는 것도 사치인 마지막이 선고되어 있었다. 콜린스는 자신의 턱을 간지럽히는 물결을 느끼며 조금 기뻐했다. 여전히 스스로의 죄목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것만으로도 어쩐지 안심하였다. 살려 달라는 외침이 없는 보면 어차피 그들 중에 살아도 되는 자는 없었고, 콜린스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에 누군가 정적을 크게 소리쳐 깨뜨렸다면 아무도 죽을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눈높이를 넘은 속에 스스로 가라앉기를 택했다. 그렇게 차갑던 물도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는 얌전히 눈을 감고 폐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산소가 바닥나기를 기다렸다. 그의 정신과는 다르게 몸은 살고자 하여 오래지 않아 새로운 공기를 갈구할 것이다. 그때는 물을 잔뜩 삼키는 것으로 생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비웃어주면 되었다. 이내 그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을 한가득 삼켰다. 기관지로 밀려오는 액체가 새삼스레 시려 절로 기침이 나왔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그가 많은 물을 삼킬 때마다 그대로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럼에도 또한 금방 끝날 찰나의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끝이야.’


콜린스는 스스로의 죽음을 직감했다. 시야가 점차 까맣게 물들어 가고, 감각이 사라져 갔다. 허파에 물이 차는 둔한 고통도 멀게 느껴졌다. 죽음의 천사가 그에게 입을 맞추기 직전이었다. 콜린스는 수만 있다면 얼른 데려가 달라고 속삭이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불현듯 이름 하나가 줄기 빛처럼 어둠을 몰아내며 나타나 죽어가던 감각을 깨우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내려치는 벼락처럼 천지를 뒤흔드는 이름에 콜린스는 저도 모르게 몸부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수중에 있는데도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 대신 물로 채워진 폐가, 박동이 느려지던 심장이, 차가운 물에 휘감긴 피부가 참을 없이 고통스러웠다. 세포 단위로 쪼개지는 같은 감각은 차마 말로 표현할 없었다. 괴로움의 중심에는 이름 있었다. 콜린스는 이름을 밖으로 내지 않으면 죽을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일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죽어야만 했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고통의 원흉을 이겨내고 죽으리라. 이를 바득 갈면서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눈까지 감고서 먹던 힘까지 짜내어 이름을 천천히 그려내듯이 말했다.


파리어.”


순식간에 밖으로 끌려 나온 생선 마냥 콜린스는 팔다리를 퍼덕이며 눈을 번쩍 떴다. 쓰나미에 덮쳐진 같던 백색 일색의 공간은 온데간데없고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마저 없어 깜깜하기만 천장이 전까지의 일이 꿈이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래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어둠 속을 살핀 후에야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긴장을 풀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고여 있는지도 몰랐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따라 옆으로 흘렀다. 식은땀에 젖어 차게 식은 피부 위를 가로지르는 눈물방울은 놀랍도록 뜨거웠다. 그는 조금 헐떡이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겨우 들어 얼굴을 마구 문질러 닦았다. 욕지거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전의 꿈은 원래 그렇게 끝나서는 되었다.


파리어, 이름은 차라리 잊고 싶은 동시에 절대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콜린스를 괴롭히는 가시 돋은 장미였다. 곁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지만 그럴 없어서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적진에 떨어졌을 사람이 과연 어떻게 될지는 콜린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칠판 위에 분필로 이름을 손쉽게 지울 있다고 마음에 새긴 이름까지 지울 있는 아니었다. 한때 그는 파리어의 흔적을 끌어안고서 꿈에서라도 그리운 얼굴을 보길 원했다. 꿈은 꿈일 현실이 아니라는 것은 부러 외면했다. 잠들었다 깨어나면 깊은 좌절감만 남아도 좋았다. 사랑에 눈이 것처럼 연인을 원하는 마음만이 그를 지배했다. 종래에는 그가 언제까지고 기다릴 있다고 자만할 만큼 그의 열망은 강했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는 본인이 지쳐 가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비교적 간단한 정찰 비행 중에 정신을 잃어 추락할 뻔한 일을 겪었을 때에야 그는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땅으로 고꾸라지던 스핏파이어의 조종간을 잡고 다급히 고도를 높이던 그가 귓전을 때리는 무전에 답을 해주기는커녕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다만 기약 없는 갈망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불태울 정도로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받아들이며 몸을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후로 그가 파리어를 꿈에서 보고 싶어하는 일은 없었고, 파리어 또한 그의 꿈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콜린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익사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파리어의 허상이 더는 그를 찾아오도록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부터였다. 그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다시 잠들지 못할 것을 예감했다. 마침 멀리서 어렴풋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이어 폭탄이 쿵쿵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전쟁의 그늘이 짙었다. 콜린스는 옆으로 돌아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태아처럼 몸을 한껏 웅크렸다.


밤이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