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에서 째지는 소리가 난 것도 잠시, 화면이 암전됨과 동시에 누군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공간에 있던 이들 중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만이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듯했다.

 

그 적막을 깨고 뭔가를 말하려던 것처럼 입을 열었던 란슬롯은 작게 숨만 들이켰다. 그 미약한 숨소리에 굳어있던 몸을 풀고 그를 돌아본 멀린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좀 전까지 영상을 송신하던 안경의 주인은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거대한 폭발소리와 함께 막 그 명운을 달리한 참이었다. 멀린의 머릿속에는 1997년의 어느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폭탄과는 정말 지독히도 연이 나빴다. 란슬롯은 차마 신호가 끊어져 까맣게 된 화면에서 눈도 떼지 못했다. 그 역시 멀린과 같은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멀린.”

 

멀린은 란슬롯의 눈꺼풀이 눈을 덮었다가 말았다가 하는 움직임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란슬롯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고, 표정은 어딘가 멍했지만 언뜻 보면 다른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멀린은 폭발의 순간과 함께 마비된 줄 알았던 감정이 갑자기 처참함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는 란슬롯이 마른침을 삼키느라 목울대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서에게 보고를보고를 해야겠어요.”

 

란슬롯은 여전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란슬롯의 두 눈이 벌써 충혈된 것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할 일이니 회의소집 전까지 대기해.”

그러죠.”

 

란슬롯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갑자기 공기가 더 많이 섞여든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그는 오른손으로 미약하게 떨리는 왼팔을 붙잡았을 뿐이었다. 멀린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다시 화면 앞으로 돌아앉았다. 그는 여전히 처참한 심정이었다. 그가 일부러 컴퓨터 장치를 다루는 척하는데 뒤로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제야 안경을 벗고 한 손으로 두 눈 위를 덮었다.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것에 이제는 동정심마저 일었다.

 

멀린은 란슬롯과 퍼시벌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가 꽤 오래 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굳이 그 관계를 타인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눈치가 빠를 뿐만이 아니라 심리를 읽는 것에도 도가 튼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희한하게도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란슬롯과 퍼시벌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다른 부류 같아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부류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멀린은 그 두 사람이 종종 닮아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모종의 관계를 눈치 챈 이후에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이해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1997년의 그 날 이후 처음으로 란슬롯과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그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언젠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당시에는 그것을 그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로 두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멀린 외에도 다수가 있었다적어도 그럴 것이라고 멀린은 짐작했다.

 

멀린은 자신의 두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떼어내고 안경을 썼다. 그의 손은 화면이 까맣게 변하기 직전까지의 영상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관련된 사건 파일을 정리하는 일을 매우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처리했다. 모든 파일을 정리하여 아서에게 전송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서는 곧장 회신했다. 추모 겸 차기 퍼시벌 후보생을 논할 회의 소집. 멀린은 곧바로 전() 기사들에게 연락을 하려던 손을 거두며 망설였다. 들리지 않던 발소리가 떠올라 다시 처참해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란슬롯의 위치를 추적해보았다.

 

란슬롯은 여전히 본부 건물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방에서 나온 후에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감을 잠지 못해서 그저 복도에 멀뚱히 서있던 참이었다. 조용한 건물 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그가 거기에서 길을 막고 있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는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떨림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움직임은 비단 팔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의 전신에서 느껴졌고 심지어 내장마저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떨림에 그는 돌연 헛구역질이 치솟아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달음박질친 란슬롯은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만 계속 했다.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에 뿌옇게 된 시야로 변기통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웃기게도 그 위로 퍼시벌의 마지막 시선이 어땠는지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러자 그는 헛구역질을 하다말고 컥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곧 헛구역질이 멎고 웃음이 크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미친놈 같이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탕헤르의 부둣가에 있는 어느 선박회사의 창고가 한 순간에 펑하고 날아가던 것처럼 터졌던 웃음이 잦아들자 란슬롯은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그의 거친 숨소리만 울렸다. 그때, 착용은 잘 하지 않지만 늘 품에 가지고 다니는 안경에서 나는 알람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말았지만 그는 확인하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갑자기 그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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