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공중을 떠도는 실낱 모양의 먼지들이 그의 눈앞까지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까만 속눈썹이 일으키는 바람에 저만치 밀려갔다. 한가로이 노니는 먼지를 쫓으면서 눈만 깜빡이던 그는 멍하니 창문을 덮고 있는 하얀 천 블라인드를 보았다. 벌써 몇 년째 창문 위에 매달아두고 쓰고 있는 천 블라인드는 표면이 거칠어 보였다. 하얗게 타오르는 햇빛이 날카롭게 찌르는 것을 막아내다 보면 상처가 터서 흉이 지는 것처럼. 그렇게 혼자 사투를 벌이는 크림 색 천이 걸러낸 빛은 한층 둔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는 빛 아래에 생긴 그림자의 경계도 묽어진 것을 알아채고 길게 이어지는 방 안의 물건들을 따라 푸른 색 눈동자를 굴렸다. 그의 시선은 희미해진 빛과 그림자 사이를 불안하게 넘나들었다.

 

그러다 보면 그의 시야에 반드시 걸리고 마는 것이 있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불명확한 공간에서 혼자만 흰 피부와 까만 옷으로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는 유일한 존재. 나폴레옹은 그 인간의 모양을 했음에도 심장이 뛰지 않는 그것을 발끝부터 위로 훑어보았다. 우두커니 길게 서서 저를 보고 있는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등이 바짝 굳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목 뒤까지 뻣뻣해지는 그 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의 굳어진 표정에 그것이 약간 겁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양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것도 그는 불쾌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을 보면서 그는 저것이 제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이 공간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했다.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눈을 꾹 감으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왜 저것을 들여온 거지? 이제는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그는 절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않고,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마냥 저를 보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눌린 그것이 어깨를 살짝 움츠리는 꼴이 퍽 가엾게 보였으나, 나폴레옹의 눈에는 그것도 다 프로그램이 된 대로 보이는 기계적인 반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가.”

, 하지만 오늘.”

난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해.”

 

강한 명령조에도 잠시 머뭇거리던 그것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로 발소리도 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나폴레옹은 까만색 등이 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후에도 얼굴을 찌푸린 채로 몸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손끝이 조금 떨리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양 손을 맞잡고 세게 힘을 주었다. 핏기가 가신 양 손이 지금 그의 온몸을 옥죄는 혐오감에 질린 것처럼 허옇게 되었다. 그는 약간 거칠어진 숨을 토해냈다. 차라리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악몽이었다면 달랐을까? 그는 살짝 틈을 남겨두고 열려있는 문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무기력하게 일리야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만 봐야하는 악몽이 현실보다 나았다. 일리야의 이름을 외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꿈을 꾸며 뒤척이는 그를 다정한 목소리로 깨워주는 일리야를 닮은 빌어먹을 안드로이드를 보는 순간에 그가 느끼는 절망의 크기는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고통은 끔찍할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폴레옹은 약에 의존하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애썼다. 억지로 불러낸 환상은 금세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일단 장벽이 허물어지면 그 사이를 쉽게 넘나들 수 있었다. 그것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뉴스를 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그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누구보다도 과거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싶었다. 그러던 그가 인간의 모양을 하고도 심장을 가지지 못한 안드로이드를 들인 것은 순전히 일리야와 똑같이 생긴 외모에 홀려서일지도 몰랐다. 과거와 현재의 기로에 서서 언제나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진짜 같은 가짜는 있지만, 진짜를 대체할 수 있는 진짜는 없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현실을 일깨워주었고,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고통스러웠다. 그는 안드로이드를 볼 때마다 혐오감을 담은 눈빛을 멀찍이서 던지며 홀로 수치스러웠다. 결국 그가 혐오하는 대상은 일리야를 닮은 안드로이드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억지로 다리를 끌어 모으고 몸을 옹송그렸다. 손끝의 떨림은 어느새 온몸으로 번져있었다. 그는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ARCHIVE > THE MAN FROM UN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리야] The THRUSH Affair 1  (0) 2016.03.01
[솔리야] The empire  (0) 2016.02.24
[솔리야] Fake hope  (0) 2016.02.19
[솔리야] Nonofficial treaty  (0) 2016.01.30
[솔리야] Encounter (For. 에피님)  (0) 201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