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들은 것은 사흘 전이었다. 떠나기 전만 해도 임무의 등급은 겨우 C급으로 분류된 것이라며 금방 오겠다고 했었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고 그랬었다. 물론,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퍼시벌은 막 임무를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오던 길에 란슬롯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심각한지 되묻는 퍼시벌에게 멀린은 침묵으로 답했다. 통신을 먼저 끊은 것은 퍼시벌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로 꼬박 나흘째였다. 삑삑 소리를 내는 각종 기계들에 둘러싸여서 수많은 전선들과 연결된 란슬롯을 내려다보는 일은 절대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퍼시벌은 흰 붕대가 칭칭 감긴 란슬롯의 오른손을 볼 때마다 허전함을 느꼈다. 킹스맨의 보급품 중 하나인 반지는 손가락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퍼시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후보생 시절에 란슬롯 아니, 제임스는 리 언윈의 죽음 외에도 폭탄과는 지지리도 맞지 않았다. 그가 훈련 중에 수류탄의 핀을 뽑아서 던져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핀이 부러져서 뽑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던 적도 있는가 하면, 예상도 못했던 지뢰를 밟아서 해체할 때까지 꼬박 하루를 그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고초를 치른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었는데 제임스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부끄러워 죽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퍼시벌은 언젠가 한 번쯤은 그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죽은 듯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나 고역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퍼시벌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란슬롯의 오른손 위에 얹었다. 미지근한 온도가 붕대너머로 느껴졌다. 그는 사라진 새끼손가락과 반지가 어디쯤으로 날아갔을지 생각했다. 아마도 한참 뒤로 날아가 살짝 둥글게 말린 채로 풀숲에 떨어져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미 절단면부터 썩어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퍽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서 침대 옆 탁자에 얹어둘 일은 없을 것이고, 그 손가락에 입을 맞춰줄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정말로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후에 세 번째로 찾아온 화요일이었다. 퍼시벌은 란슬롯이 깨어났다는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세르비아에서 임무를 하던 중이었는데 어쩐지 들뜨는 마음에 임무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일을 망친다면 그것만큼 최악인 것은 없었다. 멀린이 굳이 퍼시벌에게 사실을 알린 것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 것이지, 임무에 지장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퍼시벌은 습관적으로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맞은편에 앉은 이의 말을 경청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로비가 안 통했던 거야, 망할 놈들. 그것만 아니었어도 코소보에서 다시 불꽃이 튀었을 텐데.”

 

두꺼운 금반지 서너 개를 손가락에 끼고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냈다. 퍼시벌은 얼른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 총을 쏴버리고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벌써 열 번째로 참아냈다. 남자는 독일의 한 회사에서 빼돌린 제조법을 가지고 총기를 만들어 팔기 위해 코소보까지 이용하려고 했다. 돈에 눈이 먼 인간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면 내가 자네 붙들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겠지. 딱 한 명. 딱 한 명이 걸려들었어.”

그렇다면 아주 실패하신 건 아니군요.”

내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거래를 할 생각이야. 자네도 오겠나?”

 

퍼시벌은 걸려들었다는 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정치계에서는 영향력이 꽤 있는 편인데다가 코소보의 독립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 역시 전쟁도 불사하려고 하는 이였고 뒤에서 부리는 공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는 자와 만난다는 것은 퍼시벌의 임무도 끝이 다가온다는 소리였다. 그는 지금 얼른 영국에 있는 본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내일 저는 예정된 출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것보다 두 분끼리 이야기하시는 게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내가 자네를 불편하게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서운한 소리야. 물론, 우리가 알게 된 건 고작 2주가 채 안 됐다는 건 알지만 자네만큼 일처리가 확실한 사람은 처음이거든.”

별말씀을요.”

 

 

 

공항으로 가는 내내 퍼시벌은 안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의 목소리는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있었다. 저장된 대화내용과 그동안 그가 수집한 정보는 모두 자동으로 독일, 세르비아, 코소보 당국에 전송될 예정이었다. 3자인 킹스맨은 거기까지만 개입하기로 되어있었다.

 

대화는 퍼시벌이 전용기에 올라타자마자 끝났다. 그는 곧이어 파일이 전송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코트를 벗어 걸어두려다가 코트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았다. 손을 넣어보니 정육면체의 물체가 그의 손끝에 닿았다. 꺼내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두고 코트를 걸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퍼시벌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이를 위한 선물은 몇 시간 뒤에 그의 하나뿐인 새끼손가락 위에서 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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