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음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사제 폭탄은 그렇게 위력이 크지도 못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사정거리에 든 사람들을 죽게 만들기에는 빌어먹게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고함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없이 바닥에 엎드렸던 제임스는 폭발음이 가시자마자 다소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났다. 자욱하게 퍼진 연기가 조금씩 가시면서 그의 눈앞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상황이 펼쳐져있었다.

 

?”

 

멍해진 귀 때문인지 머리도 멍해진 것 같았다. 제임스는 방금 자살폭탄을 터뜨린 남자의 위에 엎어져있는 사람이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오른쪽에 서 있던 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니, 이것도 훈련인가? 리도 합심해서 지금 날 시험하는 거야? 새로운 종류의, 그러니까, 마지막 시험인가? 이렇게 되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 리가 죽은 건가? 그럴 리가. 시험과정에서 후보생이 진짜 죽을 리가 없어. 제임스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많은 의문들이 뒤섞여 지나갔다. 그는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리를 보았다. 그는 정말이지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엎어져있었다.

 

젠장.”

 

갤러해드의 욕지거리에 그제야 제임스가 약간 정신이 든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갤러해드는 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욕설과 함께 자책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그는 멀린에게도 뭐라고 말을 했는데 제임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쯤이면 리가 털고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제임스가 리를 계속 쳐다보았지만 리는 이미 그 밑에 깔려있는 놈과 한 몸이라도 된 듯이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실제상황이라고?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멀린이 그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도 그는 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킹스맨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제임스는 거의 무조건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닫고 놀라서 멀린과 갤러해드를 번갈아보았다. 두 사람은 이미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야기를 끝낸 상황이었다. 잠깐 제 자리에 서서 리를 바라보던 갤러해드가 통신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자, 그 뒤를 멀린이 뒤따랐다. 제임스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다가 멀린이 돌아서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에야 겨우 발을 뗐다. 그는 방금 자신이 무슨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건지 깨닫게 되었다. 경쟁자였지만 친구였던 사람의 목숨을 밟고 그는 기사의 직함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본부에 귀환할 때까지 란슬롯이 된 제임스는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갤러해드는 자신이 추천한 후보생이 자신의 실수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리느라 바빴고, 멀린은 수습을 하고 본부와 연락을 하는 등의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들에게 어느 종류의 위로나 조언을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제임스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그에게 대단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 입대하여 실전으로 이런 종류의 것을 겪어본 적도 없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추천인을 만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만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전용기를 타고 본부로 곧장 돌아온 제임스는 멀린에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멀린은 아서를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고개를 내저었다. 아서는 제임스가 란슬롯이 된 것을 크게 기뻐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지금 아서에게 그런 칭찬을 들을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할 일이 많았던 멀린은 다행히도 계속해서 괜찮다고 내빼는 그를 더는 잡지 않았다. 컴퓨터가 가득한 멀린의 모니터 룸에서 나온 그는 쉬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곧장 건물을 빠져나갔다.

 

 

*

 

 

바닥에 총질을 해대는 란슬롯의 귓가에 멀린이 지금 대체 뭐하냐고 소리를 쳤다. 정신을 다잡고 똑바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은 란슬롯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저 뒤쪽에서 인질에게 폭탄을 둘러놓았기 때문이었다. 리가 폭사한 것이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간 란슬롯은 애써 빠진 나사를 돌려놓았는데 폭탄을 다시 앞에 두니 죽어있던 리의 모습이 자꾸 겹쳐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엉뚱한 곳에 자꾸 총을 쏘아댄 탓에 탄창도 금세 비어버렸다.

 

-란슬롯, 왜 그래? 그러다가 네가 죽어!

나도 알아요, 멀린. 하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새 탄창으로 갈아 끼우며 멀린에게 답하던 란슬롯은 어깨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하마터면 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기적적으로 다른 손으로 총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름만 방탄인 정장은 총알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해 옷을 시뻘겋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절대로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점차 몰려오는 두려움은 피를 보자 폭탄과 함께 시너지 효과로 폭발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애써 웅크리며 구조물 뒤에 숨은 그는 멀린에게 제대로 된 말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결국 그는 또 다른 폭발음을 들었던가. 정신을 놓기 전에 그는 자신이 죄 없는 목숨을 또 폭탄으로 잃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도와줬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그는 병실에 있었고 그 옆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퍼시벌이 있었다.

 

폭탄은?”

 

란슬롯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퍼시벌은 잠시 란슬롯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에 란슬롯은 아직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제거했어.”

그거랑 사람이 죽은 건 다르잖아.”

 

퍼시벌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걸 보고 란슬롯은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도 또.

 

제임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커.”

인질은 살았어. 멋대로 생각하지 마. 그리고 정말로 죄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어. 그건 갤러해드도.”

나는 당신에게서 이런 식으로 위로받고 싶지 않아, 퍼시벌.”

 

제임스는 이제 옛날 일을 말하고 있었다. 퍼시벌은 그제야 깨달았다. 제임스가 갖고 있는 폭탄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은 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킹스맨과 전혀 관련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퍼시벌은 그때 자동차에 장치된 폭탄 때문에 죽은 사람이었다. 임무가 시작할 때 이미 정해져있던 시나리오대로였다. 제임스는 눈앞에서 퍼시벌의 자동차가 폭발하고 새까맣게 형체도 모를 정도로 타버린 시신을 목격했다. 끔찍했다.

 

제임스는 퍼시벌이 보기 싫기라도 한 것인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나도 알아. 그건 그저 후보생들과 숙련된 요원이 함께 했던 실전 테스트였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지. 그런데 그때 그것도 테스트였나? 그것도 망할 테스트였어?”

 

퍼시벌은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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