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퍼시벌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 미간을 좁혔다. 오늘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는 이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딱 신경이 쓰일 정도로만 느껴지는 통증에 그는 그만 이골이 나고 말았다. 미간을 팍 찌푸리고 있던 그는 저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간헐적으로 욱신대는 부위를 손가락 두 개로 꾹꾹 눌렀다. 그럼에도 두통은 사라지기는커녕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갤러해드가 안경에 앉은 먼지를 닦다가 말고 그를 힐끔 보았지만, 퍼시벌은 제 앞에 놓인 아이패드의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의식적으로 그러고 있는 모양새인지라 갤러해드도 안경을 닦던 천을 내려놓고 유리알이나 유심히 살펴보는 척을 했다. 그러고는 유리알 위에 막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려고 입으로 후 바람이나 부는 것이었다. 그는 깨끗하게 닦아낸 안경을 다시 쓰고 천을 네모나게 접어서 정리하고는 퍼시벌을 보았다.

 

잠깐 고민해봤는데 역시 나는 가만히 있을 성격이 못 되니 물어보는 거야, 퍼시벌. 무슨 문제 있나?”

 

퍼시벌은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는 갤러해드를 힐끔 곁눈질했다. 갤러해드는 의자의 팔걸이에 양 팔을 각각 올리고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글쎄요, 당신이 그렇게 신경 써 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다소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간 말투에 오히려 퍼시벌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갤러해드는 어깨만 한 번 으쓱였을 뿐이었다. 퍼시벌이 날선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대개 잘 없었다. 반대로 말해서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원인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갤러해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을 대강 넘겨짚었다.

 

아까부터 같은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기에 큰 문제라도 있나 싶었지. 동료 위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당신이? 나를?”

징그럽게 생각하진 말고.”

 

퍼시벌은 갤러해드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갤러해드는 능구렁이 같은 아서보다도 더 능구렁이 같이 굴 때가 가끔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서와 같은 과의 사람이란 소리는 아니었다. 퍼시벌은 눈이 마주친 갤러해드가 평소와 같이 입가에 그 신사적인미소만 살짝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멀린이 보내준 자료가 가득한 아이패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금방 한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갤러해드를 돌아본 퍼시벌은 그가 아직 팔걸이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손끝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퍼시벌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갤러해드를 퍼시벌이 쏘아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뭘 투사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표정은 그다지 달갑지는 않네.”

내가 이 자리를 뜨는 게 낫겠군요.”

전가하는 건 더더욱 사양이야.”

퍽이나.”

 

갤러해드는 고개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까딱였다. 퍼시벌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별로 상관없다고 여기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갤러해드가 남을 살살 긁는 것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금방 화제를 돌렸다.

 

란슬롯이 이번에는 대양을 하나 건넜던 모양이던데.”

 

퍼시벌은 대꾸하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잠시 마주쳤는데 낯빛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어.”

그랬습니까?”

 

이제 퍼시벌은 갤러해드에게서 완전히 몸을 돌려서 다시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갤러해드는 그의 뒷모습이 조금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다.

 

확실히 임무 때문에 그런 표정을 한 것 같지는 않았지.”

 

퍼시벌은 관자놀이의 통증이 느껴지던 간격이 갑자기 빨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누군가가 수시로 옆에서 바늘로 그의 머리를 찔러대는 것 같았다.

 

멀린이 걱정할 정도였네.”

 

갤러해드의 목소리가 약간 통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퍼시벌은 갑자기 등 뒤가 누가 물을 뿌린 것처럼 온통 식은땀으로 젖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책상을 내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는 빛이 약간 어두워진 화면 위로 보이는 단어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 퍼시벌의 뒷모습을 보던 갤러해드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손으로 탁탁 치면서 하의를 펴고, 상의의 끝자락을 잡아당겨서 차림새를 단정하게 한 그는 퍼시벌을 힐끔 보았다.

 

모쪼록 잘 되길 바라지.”

 

등 뒤쪽에서 갤러해드가 방을 나가는 소리를 다 듣고 나서도 퍼시벌은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이미 까맣게 꺼진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통이 순식간에 걷힌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가 다시 한순간에 통증으로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방 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가 꺼졌다가 하는 것만 같았다.

 

 

 

2

퍼시벌은 어릴 때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몰랐고 알아도 정말로 다 안다고 할 수 없었던, 그러한 때였다. 그의 어머니는 흑갈색의 짧은 머리를 깔끔하게 가르마를 타서 한쪽으로 넘기고 커다란 호박이 박힌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와인색의 드레스까지 차려입은 그녀는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젊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무엇도 즐겁지 않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밝은 회색의 리본으로 장식된 검은 상자를 양 손에 들고 있었는데 어린 퍼시벌은 그 상자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아무래도 그 상자는 퍼시벌의 아버지,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을 위해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퍼시벌은 더더욱 그 상자 속이 궁금했다. 그의 부모님은 결코 남들이 말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한 적이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 상자를 몰래 훔쳐보던 퍼시벌은 어머니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에 상자를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뚜껑을 살짝 열어서 보기만 하면 될 테니까 티도 안 날 터였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괜히 주위를 둘러보고는 상자가 있는 둥근 탁자로 다가갔다. 마치 도둑마냥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상자 앞으로 다가간 그는 조금 긴장한 채로 작은 손을 뻗어서 상자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상자의 뚜껑이 완전히 열리기 직전에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기까지 했었다.

 

상자 속에 있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좋은 가죽을 써서 광택이 은은하게 나는 구두 한 켤레. 그것이 다였다. 퍼시벌은 긴장감이 일시에 다 빠져나가서 김이 팍 새는 느낌에 얼른 상자를 덮어버렸다. 그는 그 구두에 관한 일을 금방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 이후로 그가 기억하는 특별한 일이 있다면, 아버지가 그와 어머니를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케케묵은 기억을 굳이 지금 떠올린 이유는 그가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랄까봐 똑같은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의 어머니는 다분히 고의로 그랬지만 그는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란슬롯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던 이유를 왜 그땐 몰랐을까. 퍼시벌은 피곤한 얼굴로 사선이 들어간 남색 타이를 대충 끌렀다.

 

 

 

3

신발 한 짝이 다야.”

 

멀린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으로 차분했다. 기계 소리만 희미하게 들리는 방 안의 분위기에는 그 편이 어울리긴 했지만, 퍼시벌은 그가 지나치게 평온함을 가장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멀린은 잠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퍼시벌은 멀린이 긴장하기까지 했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힘들었어.”

그렇군요.”

 

멀린은 자신만큼이나 차분하게 흘러나온 퍼시벌의 음성에 놀란 것처럼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퍼시벌은 별로 동요하지 않은 기색으로 멀린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갑자기 멀린은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만 가보아도?”

 

멀린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여서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퍼시벌도 고개를 한 번 까딱여 목례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멀린은 문이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닫히자마자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가 퍼시벌과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 두 마디를 내뱉은 게 다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장을 한 채로 사막을 건넌 것과 같은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마른세수를 한 멀린은 바퀴가 달린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까맣게 된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글자가 빼곡한 보고서 가운데에 첨부된 사진이 작게 떠있었다. 멀린은 그것을 보고 차마 창을 끄지도 못하고 그저 책상 위에 얹어둔 오른손 위로 이마를 가져다대는 것으로 그것을 시야에서 가렸다. 퍼시벌에게 신발 하나가 다라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4

어두운 색의 천으로 된 소파 위에 대충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누운 퍼시벌은 이마 위에 한쪽 팔을 얹었다. 어두운 색의 빳빳했던 정장이 다 구겨졌을 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무언가가 그를 손에 꽉 쥔 채로 놓아주지 않는 기분에 울적할 따름이었다.

 

퍼시벌은 이마 위로 얹었던 팔을 소파 밑으로 늘어뜨렸다.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는 두통이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와 동시에 그의 울적함을 한층 더 가중시키기도 했다. 푹신하게 그의 몸을 감싼 소파에서 희미하게 나는 냄새만이 그나마 약간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천 특유의 냄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의 살결에서 나는 냄새도 아닌 냄새였다. 그는 몸을 옹송그리면서 소파로 파고들어서 눈을 감고 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잠시 소파에 파고들어 마치 자궁 속의 태아와 같이 누워있던 퍼시벌은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어두운 색의 천이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고 어둡게 보였다.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그것을 보면서 그는 란슬롯의 머리카락 색깔과 같은 전혀 연관성 없는 것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자신이 란슬롯의 웃는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의문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가 정말로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던가?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의 머리를 강타한 것과 같은 두통이 느껴져서 퍼시벌은 헛숨을 들이켰다. 그가 눈을 꾹 감으니 누군가 머릿속에 영사기를 배속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고통 속에서 허덕대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는 몸을 더 웅크릴 뿐이었다.

 

 

 

5

퍼시벌은 검은색의 가죽 구두 한 짝을 내려다보았다. 몇 번 신지 않았는지 구두는 앞쪽에 약간의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새것처럼 보였다.

 

전에 말했다시피 그게 우리가 찾은 전부였어.”

 

퍼시벌은 천천히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멀린은 그의 안색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시신을 찾으려고 계속해서 노력은 하고 있네.”

 

멀린은 시신을 말할 때 발음을 약간 뭉갰다. 괜한 마음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퍼시벌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구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퍼시벌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멀린은 몸을 돌렸다. 퍼시벌에게 약간의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멀린은 반쯤 몸을 돌리다가 말고 멈추어야 했다.

 

신발을 선물하면 말입니다, 멀린.”

 

멀린은 다시 퍼시벌을 향해 돌아보았다.

 

멀리 떠나간다고 하죠.”

퍼시벌.”

그걸 신고.”

 

퍼시벌은 여전히 구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린은 뭐라고 대꾸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로 퍼시벌과 구두를 번갈아 보았다.

 

 

 

6

퍼시벌은 상자에 한 짝만 남은 구두를 넣었다. 상자는 한 켤레의 신발을 넣으면 딱 맞는 크기였기에 구두 한 짝만 넣기에는 남는 공간이 너무 많았다. 그것을 고정시켜줄 것도 없어서 상자를 들고 흔들기라도 하면 그 속에서 방정맞지 못하게 구두가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퍼시벌은 한 켤레가 아닌 한 짝만 넣고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검은색에 옅은 회색 리본이 달린 상자는 그 옛날의 것과 거의 같은 모양이었다.

 

상자를 앞에 두고 퍼시벌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았다. 상자 옆에는 오래된 리볼버 하나가 놓여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의 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던 것이었다. 퍼시벌은 리볼버의 실린더 아래로 튀어나와있는 방아쇠와 나무로 된 손잡이 부분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끈질기게도 사라지지 않는 이 통증은 거의 그의 몸에 기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통증도 조금 있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았다. 퍼시벌은 리볼버를 손에 제대로 쥐었다.

 

앞으로 있을 모든 일에 미리 애도를.

 

퍼시벌은 진심으로 마지막이 될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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