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는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을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마을의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는 마을을 사랑했었다. 이를 테면 티레니아 해와 지중해 사이에 놓인 시칠리아 섬의 온화한 기후와 해변을 거닐 때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것들이 그가 마을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는 늘 눈을 뜨면 집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며 시간을 때우고 바다가 해를 삼키기 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에 있다가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낫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리야가 더 이상 그런 생활을 즐길 수 없게 된 것은 전쟁이 유럽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진 후부터였다. 아직 시칠리아가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을 때였다. 조그만 마을의 단 하나뿐인 홍등을 단 집에서 일하던 그의 어머니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일리야가 짧은 평생 동안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만 했던 그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 편지를 받은 그의 어머니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던 것을 일리야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 그녀가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일리야는 어머니가 목을 매단 그날부터 당장 그녀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해야만 했다. 그가 15살 생일을 고작 한 달 남겨놓은 때였다.

 

그래서 종종 일리야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러시아계 이름과 외모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었다. 심지어 사진마저 남긴 것이 없어서 일리야는 도무지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끔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에서 어머니와 닮지 않은 부분을 찾아 아버지의 얼굴을 상상해보는 것이 다였다. 그가 그립다거나 보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리야는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왜 평생 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일념에 사로잡혀서 몸을 팔면서도 고고하게 굴었는지.

 

일리야! 일리야!”

 

검은색 셔츠 위로 파스텔 톤의 옅은 노란색 타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살펴보던 일리야는 밖에서 고함을 치는 포주의 목소리에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았다. 시곗바늘은 벌써 오후 12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리야는 포주의 성마른 성격에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정장 재킷의 단추를 채우고 밖으로 나갔다.

 

넌 시간개념이 없는 것이 어찌 그렇게 네 죽은 어미와 똑같아? 얼른 나가! 아직 내게 쌓인 빚이 얼마나 있는지 다시 말해줘야 하겠어?”

 

방을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는 포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일리야는 빠르게 성큼성큼 걸었다. 땅딸막한 키에 살집이 제법 있는 포주는 그런 일리야의 뒤에 대고 뭐라고 더 소리를 쳤지만, 일리야는 얼른 문을 닫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쾅 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 바깥에 달린 홍등이 부르르 떨렸다. 일리야는 그 홍등을 포주대신 노려보고는 마을의 작은 광장으로 걸어갔다.

 

팔레르모 교외의 이 작은 마을의 중앙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의 한가운데 놓인 조그만 분수대 주위에는 광장을 둘러싼 조그만 음식점들이 밖으로 내놓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널려있었다. 일리야는 매일 낮 열두 시가 되면 그곳에 나타나서 그날 밤을 함께 보낼 손님을 찾곤 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키도 훌쩍 커버리고 누가 보아도 다 큰 성인남성처럼 보이는 그와 함께 밤을 보내려는 손님이 과연 있을까 하는 걱정은 그다지 없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를 보아온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의 단골이 꽤 많았고 종종 이 마을에 들렀다가 호기심에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남자손님이었지만, 그가 성인이 되면서는 여자손님도 꽤 그를 찾았다. 일리야로서는 그렇게 손님이 꾸준히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기도 했다. 그는 원해서 몸을 파는 것이 아니었고 단 한 번도 이 일이 즐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광장의 분수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찾아 걸어가는 일리야는 절대로 주위를 둘러보거나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귀를 닫은 상태였다. 어차피 주위에서 그가 나타난 것을 알아채고 나눌 말들이란 뻔했다. 그걸 모두 듣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이는 일리야 본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익숙하게 그의 주위에 방어막을 치고 자신이 앉을 자리를 향해서 걸어가기만 했다. 분수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는 언제부턴가 그의 지정석이나 다름없어 아무도 앉지 않는 곳이었다. 분수대를 등지고 의자를 빼서 앉는 그의 표정은 다소 공허해 보였다.

 

일리야가 자리에 앉아도 가게의 웨이터는 그를 향해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다른 손님들에게만 신경을 쓰면서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어차피 일리야는 무언가를 사먹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편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의 주위에서 그럴 듯하게 옷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식사를 하다말고 벌써부터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일리야는 속으로 그들을 마음껏 조소했다. 겉만 번지르르한 척하는 속물들이 바로 그의 옆에 득시글했다. 약간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었지만 일리야는 참아냈다. 그리고 그는 정장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그러자 주위에서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벌써부터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았다.

 

Боже, храни меня.”

 

조그맣게 탄식과 같은 말을 중얼거린 일리야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그리고 그가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자 주위에서 남자들이 우르르 그의 앞에 모여들어 라이터의 부싯돌을 부딪쳐 불을 피워냈다. 퍽 우스운 광경에 일리야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자신의 앞에 모여든 이들을 살펴보았다. 그가 라이터를 쥔 손들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손의 주인과 그날 하룻밤을 보내야했다. 누가 만든 규칙인지는 몰라도 정말 좆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일리야는 자신이 어디까지나 을의 입장이라는 것을 다시 스스로에게 인식시켜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는 끝날 터이니.

 

주위를 잠시 둘러보던 일리야는 그냥 아무나 고르기로 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라이터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을 골라서 담뱃불을 붙이기로 하고 그 주인이 제발 심각한 변태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담뱃불을 붙이려고 하려던 그때에 뒤늦게 불쑥 그의 앞으로 라이터 하나가 내밀어졌다.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를 낀 손이 지포라이터를 붙잡고 있었다. 일리야는 저도 모르게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자기 또래의 젊은 남자가 티레니아 해의 색깔만큼이나 푸른 눈을 빛내며 그를 보고 있었다.

 

나폴레옹 솔로.

 

일리야는 밤이 되어서야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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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ожехрани меня

신이여 저를 구원하소서(God sa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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