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것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사방에 널렸고, 부러진 나뭇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TV의 브라운관, 등받이가 있는 의자의 다리, 쌉싸래한 알코올 향을 풍기는 술을 담고 있었던 유리병, 혹은 그 밖의 무엇이었던 것들. 그것들은 모두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온전한 형체를 이루며 존재했었지만, 이제는 원래 기능을 잃고 더 이상 존재가치를 지니지 않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그 속에서 주위를 둘러싼 것들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홀로 우뚝 서 있는 일리야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허공을 노려보는 그는 결의에 차서 당장에 무언가 대단한 일이라도 벌이고야 말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서서 숨만 몰아쉬었다. 그의 머릿속은 누군가가 눈에 보이는 난장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단어들은 까만 가죽 구두 아래에 버석하게 밟히는 유리조각들처럼 조각난 채로 이리저리 엉켜있었고, 심지어 이미지마저 어린 아이가 멋대로 낙서를 한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떠올랐다. 그 어떤 생각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뇌 구석구석에 흩어진 단어들을 모으고 골라냈다. 그리고 스무고개를 하듯이 공중에 질문을 먼저 나열하고 그 옆에 답이 될 만한 단어들을 붙여 넣었다.


누가? 카우보이가.

무엇을? 디스크를.

어떻게? 가졌다.

언제? 알지 못한다. 아마도 가비, 빈치구에라의 섬 이후.

어디서? 알지 못한다. 아마도 빈치구에라의 섬 이후.

? 미국을위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인다.

누구를? 그를.

? 가져야 한다. 디스크. 소련을 위해서.


일리야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손끝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고 손가락이 멋대로 떨렸지만, 머리는 다시 맑아졌다. 질문과 대답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는 공중에 둥둥 뜬 단어들을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엉킨 모속의 타래를 풀어낸 것처럼 생각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애초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필요가 있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그는 다소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며 숨을 쉬고 있었지만 표정은 한층 더 차분해진 것처럼 보였다. 올렉은 필요하다면 나폴레옹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렸고, 이 살인지령은 이미 일리야가 동베를린으로 향하기 전부터 유효한 것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묵직하게 느껴지던 재킷 위를 더듬어보았다. 숫자 7의 형태와 비슷한 쇳덩이가 천 아래로 만져졌다. 그는 자신이 언제 이것을 챙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비가 배신했던 것은 임무를 위해서였다. 나폴레옹 역시 디스크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받고 그대로 행동한 것일 테다. 그러면 일리야 쿠리야킨은? 그는 어떤 임무를 받았던가?


일리야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말아서 세게 쥐었다. 그는 이번 임무의 진짜 최종목표를 만나러 가야 했다.



 

“들어 와. 짐은 거의 다 쌌어. , 거기 위스키 좀 따라주겠어? 우리 그 정돈 충분히 마셔도 될 것 같은데.”


일리야는 침대 위에 펼쳐둔 짐을 다시 싸러 가는 나폴레옹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방 여기저기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KGB는 틀린 적이 없었다. 올렉이 디스크를 가져오라고 했으니 분명히 그것은 이 방 안 어딘가에 있어야만 했다. 일리야는 위스키 병을 손에 들고 전에 이 방에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도 방 안의 그 어떤 것도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가?”


일리야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나폴레옹은 침실 벽 안쪽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를 보니, 활짝 열어둔 수트케이스와 아직 챙기지 않은 옷가지가 곱게 개어져 있었다. 그가 디스크를 이미 챙겼을까? 일리야는 멀리 있는 짐들을 유심히 보다가 나란히 쌓인 셔츠 옆에 홀로 놓여있는 베스트를 보았다. 짙은 푸른색 바탕에 옅은 체크무늬가 들어간 베스트는 이번에 로마에서 나폴레옹이 줄기차게 입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가 루디의 고문실에 재킷을 두고 왔다고 불평했었던 것 같은데. 일리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베스트를 물끄러미 보았다. 반으로 접힌 베스트는 침대 위에 대충 비스듬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하늘색 통에 담긴 디스크가 있었다.


“세계는 다시 둘로 나뉘고.”


일리야는 벽 안쪽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나폴레옹을 보았다. 정말로 나폴레옹은 디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 그는 잠시 후 이 자리에서 총알에 머리를 꿰뚫린 시체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총을 발사한 사람은 일리야가 되어야 했다. 일리야는 저도 모르게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선을 마주치는 나폴레옹을 보았다. 결국 저도 스파이란 말이지. 일리야는 먼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고는 위스키를 유리잔에 따랐다.


“자네 괜찮나?”


나폴레옹은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리야는 양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그를 힐끔 보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눈치 챘다. 일리야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다시 무방비하게 등을 보이며 짐을 챙기고는 있지만 나폴레옹은 눈치를 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것은 없었다. 그가 브라우닝 권총을 수트케이스 어딘가에 이미 넣어뒀을지도 몰랐다. 딱 한 발. 그거면 되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났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임무는 완료된 거겠고?”


일리야는 품에 넣어뒀던 권총을 꺼내기 위해 지퍼를 내렸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수트케이스에 무언가를 넣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 해서 말을 했다. 그가 원래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말이 많은 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일리야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긴장감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러시아로 돌아가나?”

“그런 셈이지. 맞아.”


일리야는 천천히 대답했다. 어느덧 떨리는 손은 멎어 있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가면극이 끝을 볼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넌?”

“뉴욕으로.”


일리야는 거의 숨을 쉬지 않았다.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넣는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가 총을 쏘아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꼭 처음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 먹은 살인마가 된 기분이었다. 심장이 그의 귓가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1초가 억겁이 된 것 같았다. 재킷 안주머니는 그리 깊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손끝에는 차가운 것이 걸려들지 않았다. 어느새 나폴레옹도 허리를 숙인 채 부산하던 움직임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이 때가 지나면 다시 기회를 잡기란 하늘의 별을 따오는 일이 될 터였다.


“이런, 잊을 뻔했네. 줄 게 있어.”


일리야가 손끝에 닿은 총을 잡기 직전에 갑자기 나폴레옹이 뒤돌아서면서 무언가를 휙 던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일리야는 당황할 새도 없이 안주머니에 넣던 손을 빼서 제게로 날아온 것을 낚아챘다. 그리고 자신이 낚아챈 것을 앞뒤로 돌려본 그는 그제야 그것이 얼마 전에 빼앗겼던 아버지의 시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영영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손목시계였다. 그는 허겁지겁 왼팔의 소매를 걷어서 착용했다. 손목시계는 모든 가족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고 시베리아로 갔던 그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가족들에게 남긴 것으로 그에게는 손목시계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찾아온 거지? 일리야는 의문을 머릿속에 가득 담은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신을 똑바로 보며 서 있는 나폴레옹을 보았다. 나폴레옹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리야는 허전했던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어쩐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내 임무가 무엇인지 아나?”

“내 임무도 같은 거였지. 필요하면 죽여라.”


나폴레옹은 뒤를 돌아 베스트를 걷어냈다.


“이걸 가져오기 위해.”


일리야는 디스크를 보면서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벌린 입을 오물거리기만 하다가 곧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저 조그만 디스크에 담긴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는 조금 전에 나폴레옹을 죽이려고 했다. 수트케이스 속을 뒤적이며 꾸물대는 뒤통수에 당장이라도 총알을 박으려고 했었다. 거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진심으로 나폴레옹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그는 상대만 다를 뿐 일리야와 똑같은 살인지령을 받고도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는 굳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그는 디스크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젠장.


일리야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몰래 나쁜 짓을 하려다가 들킨 못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매우 불편해져서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저편으로 돌렸다.


“이봐, 페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일리야는 여전히 나폴레옹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나폴레옹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리야.”


갑자기 차가운 손에 뜨거운 체온이 닿았다. 일리야는 화들짝 놀라며 나폴레옹을 돌아보았다. 뭐냐고 쏘아붙이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꽤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미간을 찌푸리고 제 손보다 더 크고 길쭉한 일리야의 손을 꽉 쥐었다. 그는 당황한 일리야가 손을 잡아당겨 빼내려고 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제 손에 힘을 더 주고 일리야의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왜 이러는…!”

“손이 많이 차군. 그래서 떨고 있나?”

“뭐?”


일리야는 약간 얼이 빠진 목소리로 되물으며 나폴레옹에게 잡힌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길쭉한 손가락들이 하얗게 질려서는 추운 겨울에 발가벗고 밖으로 내쫓긴 사람마냥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분명히 좀 전에 품에서 총을 꺼내려고 할 때만 하더라도 손은 멀쩡했었다. 이명이 들린다거나 하는 징후는 없었는데 주책맞게도 왜 이렇게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상관이야?”


일리야는 퍽 날카롭게 말하고는 이번에야말로 나폴레옹의 손을 홱 뿌리쳤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양 손을 들어 보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스웠다. 그가 이제 와서 일리야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에 관심을 갖고 걱정까지 한다니 정말이지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에 손가락을 까딱이던 일리야를 보며 정신병을 운운하며 속을 홱 뒤집어 놓았던 이가 누구였던가. 흡사 이탈리아의 낭만적인 기운이 갑자기 나폴레옹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일리야는 저도 모르게 약간 비틀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과 나폴레옹의 사이가 서로의 비밀임무를 까발리고 잠깐 동질감을 느꼈다고 해서 급격하게 친밀감을 느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의 미운 정이 쌓였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칠 확률은 0에 수렴했다. 만약에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필시 둘 중 하나를 죽이는 것으로 끝날 터였다. 그러니 감상적인 것은 그 간극을 메울 수 없었다.


나폴레옹에게서 돌아선 일리야는 침대 위에 놓인 디스크를 쳐다보았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그들이 맞닥뜨린 큰 문제는 조그만 디스크였다. 아이러니했다. 저 작은 것에 든 정보가 대관절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며칠을 함께 고생하고도 금방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게 만들었다. 소련과 미국은 10년도 더 전에 핵무기에 대해 충분한 지식과 기반을 갖춰 핵무기를 개발했기에 텔러 박사의 연구자료가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서로 반목하면서 가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가 디스크를 서로 가지려고 하는 이유라면 뻔했다. 경쟁 우위를 선점하는 것. 결국 미국과 소련은 이번 임무에서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으면서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일리야와 나폴레옹이 서로를 죽이고 디스크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다만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자존심 싸움을 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리야는 미간을 찌푸리며 피곤한 얼굴을 했다.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지.”


나폴레옹이 일리야의 시선을 따라가서 디스크를 보고는 말했다. 일리야는 그를 힐끔 보았다.


“없애면 돼.”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나폴레옹은 과장하여 놀란 척을 했다. 하지만 일리야는 별로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피로를 닦아내려는 것처럼 상처가 나지 않은 오른쪽 뺨을 오른손으로 한번 문질렀다. 차가운 손이 얼굴에 닿자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으나, 그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좋아, 저건 좀 제쳐두고 다른 얘기를 하자고. 우리 아직 위스키 맛도 보지 못했어. 아까 자네가 따라둔 것이 다 휘발됐을지도 몰라.”


일리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돌아서는 나폴레옹을 보고는 문득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작게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손목시계는 어디 하나 새로 흠이 난 곳도 없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일리야는 다시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


“고맙다.”


유리잔이 놓인 협탁을 향해 가던 나폴레옹은 잠시 걸음을 멈칫하는가 싶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 걸어갔다. 그가 갈색의 액체가 밑바닥에 깔린 잔 두 개를 집어 들고 다시 이쪽으로 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던 일리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심으로. …나폴레옹.”


약간의 시간을 두고 우물대는 소리로 덧붙여진 이름에 나폴레옹은 양 손에 잔을 든 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일리야 역시 저도 모르게 온몸을 긴장하여 어금니를 꽉 깨물어서 턱 관절이 얼굴에 도드라졌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나폴레옹의 푸른 눈이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띄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그저 감사의 인사를 했을 뿐인데 그것이 나폴레옹의 무언가를 건드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눈꺼풀도 깜빡이지 않고 서로의 눈만 보았다. 그들은 겨우 두어 발짝 떨어져 서 있었다. 갑자기 주위가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느낌에 일리야는 조금 불편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한숨을 쉬면서 먼저 시선을 뗐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서 일리야에게 잔을 하나 건네고는 제멋대로 일리야가 쥔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내 이름까지 불러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넋두리라도 하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잔을 한번에 다 비우는 것을 보고서야 일리야는 알코올 냄새가 훅 끼치는 위스키를 입안을 약간 적시는 정도로만 머금었다가 삼켰다. 단맛이 살짝 혀에 감돌려고 하자 곧바로 쓴맛이 입 안을 쓸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가 잔을 쥔 오른손이 여전히 바르르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목젖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던 나폴레옹도 그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들어올린 오른손이 잡고 있는 유리잔 너머로 채도가 다른 눈동자들이 마주쳤다.


“젠장.”


숨결이 맞붙으면서 액체가 담긴 유리잔이 카펫 위로 떨어졌다.








+ Happy birthday Napoleon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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