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놈들.”

로망스 언어 특유의 흘러가는 발음이 짓씹듯이 들려왔다. 퍼시벌은 다소 울리는 머리가 움직이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눈알만 굴려 탁자 왼편에 서있는 남자를 힐끔 보았다. 그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퍼시벌과 란슬롯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굳게 다물린 입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듯이 조금씩 움직이는 그의 오른쪽 뺨에는 길게 늘어진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었다. 퍼시벌의 시선은 다시 정면으로 옮겨갔다. 란슬롯의 왼쪽 눈은 심하게 붓고 멍이 들어 반쯤 감겨있었고 입가가 터져 시커멓게 피딱지가 올라앉아있었다.

사방에서 긴장한 적막이 조여들었다. 하지만 퍼시벌은 적막에 몸을 내맡길 수가 없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란슬롯은 미소를 짓기에는 얼굴 근육이 그의 생각을 따라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퍼시벌의 눈에 비치는 란슬롯은 그 꼴을 하고도 웃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천성은 징그러울 정도였다. 퍼시벌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 란슬롯의 눈동자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래, 그렇지.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불지 않겠지.”

남자는 갑자기 적막을 깼다. 그의 목소리에 기이한 희열이 스며있었다. 란슬롯이 그것을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퍼시벌은 그것을 알아챘다. 지금은 킹스맨의 선택이 그들을 구조하는 것인지, 그들이 죽든 살든 알아서 끝내도록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퍼시벌과 란슬롯은 그 어떤 선택지가 그들 앞에 들이밀어져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것이었다. 그 점은 지금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진 고문에도 두 사람이 단 하나의 단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통해 저들도 깨달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저런 류의 희열이 담긴 목소리는 두 스파이가 갓 잡혀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들을 수 없던 것이었다. 퍼시벌은 시선을 란슬롯에게서 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지금 사고하는 것이 원활하지 못했다.

탁자 위를 양 손으로 짚고 잠시 고개를 숙인 채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남자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한쪽에 서있던 금발의 우락부락한 똘마니를 향해 손짓했다. 퍼시벌은 여전히 란슬롯과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금발의 남자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건넸다.

남자가 건네받은 것은 경찰용 리볼버였다. 콜트에서 생산한 콜트 디텍티브 스페셜, 38구경, 1927년부터 1986년 생산, 1993년에서 1995년 재생산. 최소 15년 된 총이었다. 퍼시벌은 란슬롯 역시 그 총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란슬롯과 퍼시벌은 거의 동시에 그 총을 보고는 다시 서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빼서 들어있는 총탄을 확인했다. 퍼시벌은 남자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할 요량인지 이미 파악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눈치들 챈 모양이야? 아주 대-단한 양반들이시니 규칙쯤이야 알겠지. 어차피 규칙이라고 해봤자 길 가던 코흘리개들도 알 만큼 간단하기도 하고.”

남자는 아까보다 훨씬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에는 실린더에서 빼낸 총탄 5개가 짤랑이고 있었다. 그는 총탄이 단 하나만 들어있는 작은 6연발 리볼버의 실린더를 마구 돌렸다.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는 넓은 공간을 울리며 퍼져나가다가 둔탁한 메아리를 남기며 일순 멈추었다.

“자신 있는 놈부터 시작해.”

퍼시벌은 과거 헝가리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러시안룰렛은 마치 고전게임과 같은 수준이 되어 생각보다 현장에서 잘 볼 수 없는 편에 속했다. 그러나 그가 러시안룰렛을 마주친 적이 몇 번 있는데 최근의 기억이 바로 헝가리에서의 일이었다. 지금과 달랐던 점이라면, 남자의 자리에 퍼시벌이 있었고 리볼버의 실린더에는 단 하나의 총탄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블러핑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탁자 가운데에 놓인 리볼버에는 정말로 단 하나의 총탄이 들어있었다.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퍼시벌은 란슬롯의 그 무엇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핏줄기가 여기저기 말라붙은 손으로 리볼버를 먼저 잡은 건 란슬롯이었다. 퍼시벌은 그가 꽤나 잽싸게 리볼버를 잡아채는 것을 보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조그만 리볼버가 그의 손에서 유난히 작아보였다. 란슬롯은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총구를 곧장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댔다. 머리의 찢어진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린 것이 채 다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퍼시벌은 왠지 모를 오싹한 느낌에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란슬롯은 그런 퍼시벌을 향해 이번에는 정말로 미소를 지었다.

“Don’t be afraid. We were born to die.”

방아쇠가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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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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