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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랜] Prologue

2015. 5. 17. 23:06

  피로가 몰려왔다.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해서 눈꺼풀이 더 이상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하여 자꾸만 시야가 점멸했다. 눈물이 말라버렸는지 뻑뻑한 눈은 손으로 문지르지 않아도 이미 벌겋게 핏발이 서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도 안구를 충분히 적셔줄 만큼의 눈물도 나오지 않아서 소용이 없었다. 절로 터져 나오는 한숨을 내쉬자 날숨과 함께 그나마 남은 기력도 마저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축 처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퍼시벌은 자세를 흐트러지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보통 타인을 관찰하는 주시자의 입장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이만큼 의식한 것도 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일이었다.

  주인 없는 관에 흰 꽃들을 내려놓는 지난한 과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퍼시벌은 작은 홀의 맨 뒤에 서서 그나마도 많지 않은 장례식 참석자들이 하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하얀 수선화 다발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퍼시벌은 줄어드는 사람들의 행렬과 비례하여 쌓여가는 하얀 국화들이 자신에게 지독한 피로감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하얀 수선화들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도 그래서였다.

  가웨인이 마지막으로 하얀 국화를 관에 넣고 마치 제임스의 생전 모습을 그려보기라도 하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가 관 앞을 떠나고도 잠깐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퍼시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약간은 발을 질질 끄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의 발이 붉은 카펫을 스치면서 내는 소리는 모든 이의 시선을 끌었다. 퍼시벌은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에 든 꽃다발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주인 없는 관 앞에서 퍼시벌은 고개를 살짝 숙여 관 속을 보았다. 텅 비어있던 관은 흰색 일색의 꽃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관의 주인은 그 꽃들인 듯했다. 퍼시벌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흰 종이에 싸인 흰 수선화 다발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꽃들의 산 위로 올려놓았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수선화의 달콤하면서도 박하향이 섞인 독특한 향이 너울거렸다. 그 향에 퍼시벌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지만 꼴사납게 비틀거리는 않았다. 그는 숨을 깊게 내쉬면서 다시 똑바로 관 앞에 섰다.

“To…James.”

  퍼시벌은 뻑뻑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단단한 마호가니로 된 관과 그 속의 흰 국화들 위에 놓인 흰 수선화 다발이 그에게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중얼거리며 내뱉은 두 단어는 허공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져버렸고 그의 눈앞에는 희미하게 꽃들 사이에 파묻힌 형상이 보였다.

  피로감을 안겨주는 근원.

  퍼시벌은 꽃들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지친 표정으로 돌아섰다. 모든 것이 사방에서 그의 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피로감이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그대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홀을 빠져나가는 그의 앞에 멀린이 축 쳐진 눈썹을 하고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퍼시벌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퍼시벌이 레퀴엠도 울리지 않는 홀을 돌아본 것은 그가 탄 차가 이미 큰 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원고를 할 계획입니다.
퍼랜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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